정부가 새해 전기요금을 인상하기로 하면서 전력 사용량이 많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철강, 정유, 석유화학 기업들은 연간 수백억원의 추가 부담을 안게 됐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023년 1분기에 전기요금을 킬로와트시(㎾h)당 13.1원 인상하는 내용의 조정안을 30일 발표했다. 전기요금 인상에 따라 국내 전력 사용량 1·2위인 삼성전자(005930)SK하이닉스(000660)의 전기요금이 크게 늘게 됐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전력 사용량은 184억㎾h로, 전기요금 인상에 따라 연간 2400억원 규모의 비용이 증가한다. 지난해 92억㎾h의 전력을 사용한 SK하이닉스는 연간 전기요금이 약 1200억원 늘어난다. 반도체 수요 급감에 따라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이 크게 줄고, SK하이닉스는 적자로 전환될 것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적지 않은 금액이다.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 클린룸. /삼성전자 제공

일부 디스플레이업체의 부담도 상당할 전망이다. 올해 누적 영업손실이 1조원을 넘어선 LG디스플레이(034220)는 지난해 전력 사용량이 62억㎾h였다. 이를 토대로 추산해보면 연간 820억원의 전기요금이 추가로 발생한다. 삼성디스플레이도 지난해 전력 사용량(68억㎾h) 기준 연간 전기요금 890억원을 더 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전력 사용량이 많은 철강업계 역시 마찬가지다. 국내 최대 전기로 업체인 현대제철(004020)은 지난해 전력 사용량이 70억㎾h였다. 전기요금 인상으로 연간 비용이 920억원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같은 기준으로 ▲포스코 490억원 ▲동국제강(460860) 240억원 ▲세아베스틸 140억원 등의 추가 전기요금을 부담해야 할 것으로 추산됐다.

철강업계는 그동안 전기요금 인상분을 제품 가격에 반영해왔으나 철강재 수요가 줄면서 새해에도 전기요금 인상에 맞춰 제품 가격을 올릴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석유화학·정유업계도 전력 사용량이 많아 전기요금 인상에 다른 비용 부담이 적지 않다. LG화학(051910)은 지난해 38억㎾h의 전력을 썼던 만큼 전기요금이 약 500억원 추가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정유 4사의 추가 전기요금은 ▲S-Oil 530억원 ▲GS칼텍스 380억원 ▲SK에너지 360억원 ▲현대오일뱅크 260억원 등이다. 정유업체들은 정제마진 강세에 따라 비용 부담을 상쇄할 수 있으나, 석유화학업체들은 영업이익 규모가 반토막난 상황에서 부담이 더 늘게 됐다.

우리나라의 산업용 전기요금은 다른 나라에 비해 저렴한 편에 속한다. 2020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전기요금을 100이라고 할 때 우리나라의 산업용 전기요금은 88정도다. 이탈리아나 독일, 일본 등에 비하면 절반 수준이다. 하지만 정부가 2026년까지 단계적으로 전기요금을 현실화하겠다고 예고한 만큼 앞으로 인상랠리가 이어질 가능성이 열려있다.

특히 1분기에 동결한 가스요금도 2분기 이후 인상 여부를 검토하기로 했다. 철강과 석유화학업체들은 도시가스 소비도 많아 비용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경기 전망이 불확실해 우선 비용을 최대한 줄이는 경영 효율화에 초점을 맞춰 대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