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국이 가파르게 금리를 올리면서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대기업들이 신사업에 대한 투자를 멈추지 않고 있다. 지갑을 닫는 것이 당장의 불확실성을 이겨내는 덴 도움이 되겠지만, 적기에 투자해야 향후 경기가 회복됐을 때 시장을 장악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기업들은 유상증자, 부동산 매각 등 각종 수단을 동원해 신사업을 위한 현금을 확보하고 있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096770)은 지난 23일 SK온에 1조원 출자를 완료했다. 지난 21일 SK온이 실시한 2조8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에 2조원 규모로 참여하기로 결정한 데 따른 것이다. 나머지 1조원은 내년 1월 30일에 추가로 투입할 예정이다. SK이노베이션은 “배터리 사업의 성장성을 확신한다”며 “직접 투자를 통해 배터리 수요 증가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기업가치 상승을 이끌 것”이라고 밝혔다.

SK온과 포드가 미국 테네시주에 합작 설립하는 배터리 공장 조감도./포드 제공

롯데지주(004990)와 롯데물산은 롯데케미칼(011170)이 실시한 1조2155억원의 유상증자에 각각 3011억원, 2353억원 규모로 참여하기로 했다. 롯데케미칼이 자금 확보에 나선 주 목적은 국내 2위 동박 제조기업인 일진머티리얼즈의 인수 자금 마련을 위한 것이다. 일진머티리얼즈 인수 대금이 2조7000억원에 달하면서 롯데케미칼은 신용등급 하락 위기에 놓이는 등 재무 부담이 급증했지만, 그룹사까지 동원해 배터리 소재 사업 확대에 대한 의지를 이어가고 있다.

비주력 자산, 보유 부동산을 매각해 신사업 투자를 늘리는 사례도 늘고 있다. 코오롱인더(120110)스트리는 대구 염색공장과 인천 화학공장 등을 매각해 1000억원가량을 마련했다. 이 자금은 아라미드 등 신소재와 수소·2차전지 사업 확대에 쓰일 전망이다. SK E&S는 수소, 재생에너지 등 미래 사업 투자를 키우기 위해 자회사인 부산도시가스가 보유한 부산 사옥 등을 6328억원에 매각했다.

효성첨단소재는 국내외 탄소섬유 사업에 투자하기 위해 울산 언양공장을 1500억원에 매각하려 했지만, 최근 계약이 해제돼 새로운 매수자를 찾고 있다.

기업들은 경기 둔화로 수익성이 하락하고 있지만 미래 신사업만큼은 투자를 지속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 기업 관계자는 “최근 국내외에서 수요가 위축돼 주요 사업의 이익이 크게 줄었지만, 지금 신사업을 키워두지 않으면 향후 경기가 회복돼도 기업의 위기는 지속될 수 있다”며 “우선순위를 따져 투자에 나서야 할 때”라고 말했다.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국내 매출 500대 기업 중 응답한 100곳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내년 투자 계획을 수립한 기업(52곳) 중 과반인 67.3%는 올해와 비슷한 수준의 투자를 이어가겠다고 답했다. 13.5%는 내년 투자 규모를 더욱 확대하겠다고 했는데, 그 이유로 미래 비전 확보(52.4%), 업계 내 경쟁 심화(19%), 불황기 적극 투자로 경쟁력 강화 도모(14.3%) 등을 꼽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