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가스 공급을 주업으로 하는 삼천리(004690)그룹은 올해 주가가 약 4배 올랐다. 삼천리는 도매업자인 한국가스공사(036460)가 수입한 천연가스를 공급받아 일정 이익을 붙여 경기도·인천 지역에 공급한다. 난방을 많이 하는 겨울에 이익을 내고, 그 외 시즌에는 이를 위한 투자를 하는 안정적인 사업 구조를 갖고 있다.
최근 3년간 매출은 3조원대, 주가는 8만~9만원대에서 움직였는데 올해 주가가 39만원까지 치솟으며 신고가를 경신했다. 이 기간 3000선에서 2300선까지 미끄러진 코스피와는 대조적이다.
삼천리 주가가 뛴 이유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테마주로 엮였기 때문이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하자 실적이 좋아질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작용한 것이다. 실적을 구조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신사업이 없는 상황에서 주식이 과열 양상을 이어가자 내부에서도 경계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회사 관계자는 “삼천리는 일정 수수료만 붙여서 팔기 때문에 천연가스 가격 상승으로 인한 이익 변화는 크게 없다”며 “향후 매출이 일시적인 착시효과에서 벗어나 제자리로 돌아왔을 때 주주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1955년 연탄회사로 출발한 삼천리는 1980년대 들어 주력사업을 도시가스, 해외 에너지 자원 개발로 전환했고 1997년부터는 도시가스 선두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2005년 창립 50주년 당시 다소 두루뭉술한 ‘친환경 생활문화사업’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한다고 선언한 뒤 이 비중을 전체 매출의 30%까지 늘리겠다고 했으나 요식업, 자동차 판매업(BMW 딜러사) 등의 대표 신사업 매출 비중은 현재 10%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신규 먹거리를 발굴하고 그 규모를 키우는 게 최대 과제인 상태다.
삼천리는 3세 경영이 임박했다. 창업주인 고(故) 이장균 회장의 손자이자 현재 회사 최전선에 있는 이만득 명예회장의 조카인 이은백 사장이 주인공이다. 삼천리그룹의 미국 현지 사업을 총괄하는 미주본부장을 맡으며 글로벌 감각에서 높은 점수를 받고 있는 그는 9월 말 현재 회사 지분 9.18%를 보유하며 이 명예회장(8.34%)을 넘은 최대주주에 올라 있다. 이 명예회장은 딸만 세 명이 있고, 이 사장은 작고한 형의 아들이다.
이 회장의 막내딸인 이은선 전무는 회사 미래사업총괄(신규사업본부장)을 맡으며 먹거리를 발굴 중이다. 고급 중식당 ‘차이(Chai)797′, 홍콩음식점 ‘호우섬’ 등을 내고 지점을 늘려나가고 있다. 일각에선 이 사장과 이 전무의 경쟁 구도를 그리기도 한다. 이 전무의 지분이 현재로선 0.67%에 그치고 있지만 두 언니인 이은희·이은남씨 역시 동일하게 0.67%의 지분이 있고, 이 명예회장의 지분까지 고려할 경우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긴 어렵다는 평이 나온다.
흥미로운 것은 유용욱 ST인터내셔널(옛 삼탄) 실장이 이은백 사장과 동일한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점이다. ST인터내셔널은 1962년 광산업으로 시작해 에너지 전문기업으로 성장했다. 삼천리 창업주인 고 이장균 회장은 당시 고 유성연 회장과 회사를 공동 설립한 이후 삼천리는 이씨가, 삼탄은 유씨가 각각 독립 경영하기로 한 것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두 집안은 경영은 독립적으로 하되 지분은 절반씩 나눠 갖고 주요 의사결정은 함께 의논하기로 했다. 유 실장은 현재 회사를 이끌고 있는 유상덕 ST인터내셔널 회장의 둘째 아들이다. 이은백 사장과 마찬가지로 회사를 이끌 유력한 3세 후계자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황성현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천리는 요식업, 자동차 유통업이 성장했고 본업에서 안정적인 실적을 내고 있다”면서 “최근 에너지 대란이 겹치며 주가가 급등했으나 세계 가스 가격 상승이 회사의 자산가치 증가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064850)에 따르면, 삼천리는 올해 5조1465억원의 매출을 올릴 전망이다. 영업이익 역시 1625억원으로 전년 대비 두 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삼천리 관계자는 “영업이익 급증은 ‘에스파워’라는 민간 발전 자회사가 1~3분기에 465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리며 선전한 데 따른 것”이라며 “올해처럼 연료 가격이 과도하게 급등하면 한국전력(015760)이 발전사들로부터 전력을 구매하는 도매가격인 SMP(계통한계가격)도 급등하고, 발전 사업자들의 정산금도 늘어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