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서울에서 버스로 4시간 넘게 달려 도착한 경북 울진군 북면 한국수력원자력 한울원자력본부. 1988년부터 들어서기 시작한 한울 원전 1~6호기가 운영되는 곳이자 한수원 및 협력사 직원 4400여명이 근무하는 국내 최대 원전 본부다. 이곳에 새 식구가 들어왔다. 건설 착수 12년 만인 지난 7일 상업운전을 시작한 신한울 1호기와 내년 가동 예정인 신한울 2호기가 그 주인공이다.

신한울 1호기를 가동하는 데 10년이 넘게 걸린 것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영향이다. 당초 2017년 4월 상업운전을 시작할 예정이었지만, 탈원전 정책이 시작되면서 제동이 걸렸다. 경북 경주 지진에 따른 용지 안전성 평가와 기자재 품질 강화 등 각종 이유로 일정이 지연됐다.

그러다 지난해 7월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 조건부 운영 허가를 받아 시운전에 돌입했다. 수소제거설비의 성능과 안전성 문제가 또다시 논란이 됐지만, 연구진의 분석과 평가에 따라 문제가 없다는 결과를 받았다.

신한울 1호기는 핵심 설비인 원자로 냉각재 펌프(RCP)와 원전 계측제어 시스템(MMIS) 등을 국산화해 기술 자립을 이뤄낸 ‘한국형 원전(APR1400)’이다.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과 같은 노형이다. 발전 용량은 1400㎿(메가와트)다. 황주호 한수원 사장은 “신한울 1호기는 연간 약 1만GWh(기가와트시)의 전력을 생산하게 된다”며 “이는 경북 지역 전력소요량의 약 23%를 감당할 수 있는 양으로, 국내 발전량의 약 1.8%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북 울진군 북면 한국수력원자력 한울원자력본부에 있는 신한울 1호기.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안전, 또 안전… 곳곳에 이중장치 마련

문재인 정부는 ‘원전은 값싼 발전 단가를 최고로 여겼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은 후순위였다’고 주장하며 탈원전 정책을 밀어붙였다. 신한울 1·2호기는 아파트 24층 높이(약 72m)인 1호기의 돔 형태 원자로 격납건물은 외벽 두께가 122㎝에 달한다. 단순히 콘크리트 벽이 아닌, 지름 5.7m의 철근을 촘촘하게 엮어 넣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의 경우 외벽 두께가 10㎝ 불과했다는 것과 비교하면 12배 이상 두꺼운 셈이다.

원전 내 각종 기기의 상태 확인과 운전, 제어가 가능해 원전의 ‘두뇌’로 불리는 주제어실(MCR) 역시 안전성에 초점을 맞췄다. 홍승구 한울원자력본부 기술실장은 “원전의 디지털화는 고장 등 안전성 이슈가 충분히 검증돼야 해 다른 산업보다 비교적 늦게 도입됐다”며 “국내의 경우 새울1호기(옛 신고리 3호기)와 UAE 바라카 원전 등 APR1400 노형부터 디지털화된 제어반이 채택됐다”고 설명했다.

실제 이곳 주제어실은 디지털 제어반으로 운영되지만, 컴퓨터가 고장났을 때를 대비해 사무실 벽면 한쪽을 모두 차지하는 거대한 아날로그 형식의 안전제어반도 두고 있었다. 홍 실장은 “안전제어반으로는 원전을 100% 운영할 수 없지만 정지와 냉각제어 등 필수 기능은 통제할 수 있다”고 했다. 주제어실에 화재 등으로 진입이 불가능할 경우를 대비해 한층 아래에 원격 정지 제어반까지 마련돼 있었다.

원전의 '두뇌'로 불리는 신한울 1호기의 주제어실(MCR). 주제어실에서는 원전 내 각종 기기의 상태 확인과 운전, 제어 등의 기능을 수행한다./한수원 제공

열생산 계통과 증기생산 계통이 분리돼 있어 방사능 물질이 외부로 유출될 가능성이 극히 낮다는 점도 APR1400의 특징이다. 격납건물 내 원자로에서 데워진 물은 작은 관을 통해 증기발생기를 한 바퀴 돌게 되는데, 이 작은 관 바깥에 차있는 깨끗한 물이 열기로 뜨거워져 증기를 내뿜게 된다. 이렇게 발생한 증기가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하는 것이다.

즉 원자로에서 데워진 물은 방사능 물질이 있지만, 증기를 직접 만들지 않고 터빈과도 만나지 않아 안전하다는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은 증기발생기 없이 원자로에서 방사능 섞인 스팀을 만들어 바로 터빈을 돌리는 구조였다.

신한울 1호기의 경우 저압터빈 3개, 고압터빈 1개 등 총 4개의 터빈으로 이뤄져 있는데, 특히 저압터빈의 전력 생산성이 기존 신고리1·2호기 등 국내 원전 대부분에 적용된 OPR1000보다 크게 향상됐다. 날개가 커질수록 에너지를 많이 생산할 수 있는데, OPR1000의 경우 43인치짜리 날이 적용됐지만 APR1400에선 길이가 52인치로 늘어났다. 이 날개들은 1분에 1800회 회전하며 전기를 만들어낸다.

사용후 핵연료 저장조는 원자로와 지하터널로 연결돼 있었다. 이곳에서는 236개 연료봉을 묶어 무게 640kg, 높이 4m에 달하는 핵연료 다발을 1844개 보관할 수 있다. 이는 원자로를 22년간 돌리는 데 필요한 양이다. 깊이 10m가 넘는 수조 바닥은 수영장처럼 격자 무늬가 그려져 있었는데, 이 격자 하나하나에 핵연료 다발을 넣을 수 있다. 이렇게 수조 속에 넣는 이유는 핵연료에 남아있는 열을 제거하기 위해서다.

신한울 1호기 내에 있는 사용후 핵연료 저장조. 22년치 사용후 핵연료를 저장할 수 있다./한수원 제공

◇ 전력 차단시 디젤발전기 자동 작동, 수소 제어기도 설치

신한울 1호기와 쌍둥이 격인 신한울 2호기는 아직 운영허가 전 단계라 내부에 설치된 다양한 안전장치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먼저 발전소 외부엔 5개의 냉각수 공급 투입구를 갖췄다. 신기종 신한울 1·2호기 건설소장은 “후쿠시마 원전은 사용후 핵연료 저장조 등에 물 공급이 안돼 방사능이 누출됐다”며 “국내 원전은 중대사고시 외부에서 비상 냉각수를 공급할 수 있다”고 말했다.

외부의 전기 공급이 끊길 때 자동으로 작동하는 비상디젤발전기도 갖췄다. 원자로를 안전하게 정지하거나 방사능의 방출을 방지하기 위해 필수 기기에 전원을 공급하기 위해서다. 2호기에만 2대의 비상디젤발전기가 있는데, 한 대당 7일간 발전 가능한 용량을 갖췄다. 이마저도 동작이 안되면 대체교류발전기가 투입된다. 안전설비를 다중화한 것이다.

원전 내 수소 농도를 낮춰주는 피동촉매형수소재결합기(PAR)도 신한울 2호기 곳곳에 30대가 설치돼 있었다. 핵연료 다발을 감싸는 피복관에는 지르코늄 합금이 사용되는데, 1200℃ 이상에서 수증기를 만나면 수소가 생성된다. PAR는 백금을 넣어 이용하는데, 수소가 발생하면 이 백금과 촉매 반응을 일으켜 물이 된다. 신 소장은 “공기 중 수소 농도가 10%를 넘기면 폭발이 발생하는데, 역시 후쿠시마 원전의 문제였다”며 “국내 원전엔 모두 PAR 설치를 완료했다”고 말했다.

황주호 한수원 사장은 “신한울 1·2호기는 해외 수출 주력 노형인 APR1400으로, 이들 원전을 잘 운영하고 건설하는 데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돼 있다”며 “신한울 1호기가 국내에서는 전력 피크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고, 해외로는 수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안전하게 운영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