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034730)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간의 이혼 소송에서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위자료 1억원, 재산분할 665억원을 지급하라는 1심 판결이 나오면서 과거 재벌 일가의 이혼 소송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번 1심 판결은 과거 재벌가 이혼 소송 사례와 비교했을 때 예견된 결과라는 분석이 법조계에서 나온다. 노 관장은 최 회장에게 위자료 3억원과 함께 최 회장이 보유한 1조2200억원 상당의 ㈜SK 주식을 지급하라고 요구했으나, 법원은 일부만 받아들였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사진 왼쪽)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가정법원 가사합의2부(김현정 부장판사)는 이날 오후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 소송 1심 판결에서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이혼 위자료 1억원을 지급하고, 655억원을 재산분할하라고 판결했다. 이는 최 회장이 노 관장을 상대로 법적 이혼 절차에 돌입한 지난 2017년 7월 이후 약 5년 5개월 만이다.

최 회장과 노 관장은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의 취임 첫해인 1988년 9월 청와대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슬하에 세 자녀를 뒀다. 그러나 최 회장은 2015년 혼외 자녀의 존재를 자인하며 노 관장과는 성격 차이로 이혼하겠다고 언론을 통해 공개적으로 밝혔다.

노 관장은 2019년 12월 이혼에 응하겠다며 반소(맞소송)를 내면서 위자료 3억원과 최 회장이 당시 보유한 ㈜SK 주식 1297만5472주 중 절반인 648만7736만주를 지급하라고 요구했다. 이는 ㈜SK 전체 주식의 8.7%에 해당하는 규모로, 현재 시가총액 기준 1조3000억원에 이른다. 노 관장은 최 회장이 이혼과 재산분할 소송이 마무리될 때까지 주식을 처분하지 못하게 해달라는 내용의 가처분도 신청해뒀다. 서울가정법원은 노 관장의 신청을 일부 받아들여 올해 4월 350만 주의 처분을 금지한 바 있다.

그러나 이날 법원은 노 관장의 주장을 기각하고 최 회장의 손을 들어준 모양새다. 이번에 결정된 재산분할액은 노 관장이 청구한 금액의 4.9%에 불과하다.

이번 판결이 어느 정도 예상된 결과라는 분석도 나온다. 과거 사례를 보면, 그간 국내 재벌가의 이혼 소송 판례에서는 오너가(家)의 상속 및 증여 재산은 재산 분할의 대상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부진 호텔신라(008770) 사장과 임우재 전 삼성전기(009150) 고문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 사장은 지난 1999년 8월 당시 삼성 계열사(에스원(012750))의 평사원이던 임 전 삼성전기 고문과 결혼했다. 그러나 2014년 10월 이 사장은 이혼 조정신청 및 친권자 지정을 신청하며 이혼 절차에 돌입했고, 이듬해 2월 이혼소송을 제기했다. 두 사람은 상고심까지 가는 법정 다툼 끝에 이 사장이 임 전 고문에게 재산 141억1300억원을 지급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당초 임 전 고문은 소송 과정에서 이 사장의 전체 재산이 2조5000억원대 규모라고 주장하며 절반가량인 1조2000억원대의 재산분할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재판부는 혼인 이후 형성한 공동 재산만이 분할 대상이 돼야 한다는 전제로 판결을 내렸다. 따라서 이 사장이 고 이건희 선대 회장으로부터 받은 주식 1조5000억원 상당은 분할 대상에 포함하지 않았다. 별거 기간이 10년을 넘어가 임 전 고문이 재산 형성에 크게 기여하지 않은 점도 고려됐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003490) 부사장 역시 최근 이혼소송 1심 판결을 받았다. 조 전 부사장은 지난 2010년 10월 성형외과 전문의 박모씨와 결혼해 슬하에 쌍둥이 자녀(2남)를 두고 있다. 그러나 2018년 4월 남편 박씨는 ‘결혼생활 동안 조 전 부사장이 자신에게 폭언과 폭행을 했고 자녀도 학대했다’는 취지로 이혼 소송을 제기했다. 자녀 양육권도 함께 청구했다.

법원은 지난달 17일 조 전 부사장이 박씨에게 13억3000만원을 지급하라는 내용의 1심 판결을 내렸다. 판결 금액으로 보아 재판부는 재산분할 대상에 조 전 부사장이 가진 대한항공 주식 등을 포함하지 않고 상속이나 증여 재산으로 파악한 것으로 추정된다. 법원은 조 전 부사장의 아동학대 혐의는 인정하지 않고, 조 전 부사장을 자녀들의 양육자로 지정했다.

그래픽=이은현

재벌가의 이혼 중 유명한 해외 사례로는 아마존 창업자인 제프 베이조스가 꼽힌다. 베이조스 CEO는 지난 1993년 메켄지 스콧과 결혼, 이듬해인 1994년 아마존을 창립했다. 두 사람은 슬하에 아들 3명과 딸 1명 등 4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2019년 1월 베이조스 CEO는 결혼 25년 만에 이혼을 선언했고, 그해 4월 메켄지가 제시한 이혼 조건에 합의하며 두 사람은 정식 이혼했다. 베이조스 CEO는 이혼 이후 보유하고 있던 아마존 지분 16.1% 가운데 25%에 해당하는 지분 4%(356억달러·당시 약 40조7000억원)를 매켄지에게 넘겼다. 다만 해당 지분의 의결권은 베이조스 CEO에게 그대로 귀속된다는 조건이 달렸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공동창업자 역시 지난해 공식 이혼했다. 빌 게이츠는 1987년 당시 MS사의 마케팅 매니저였던 멀린다와 교제를 시작해 1994년 결혼했다. 둘은 2000년 자선 재단 ‘빌 앤드 멀린다 게이츠 재단’을 공동 설립하기도 했다.

그러나 둘은 지난해 8월 결혼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구체적인 재산 분할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멀린다 게이츠는 이혼 발표 직후 24억 달러(당시 2조7600억원) 가치의 4개 회사 주식을 빌 게이츠로부터 넘겨받았다고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신고한 사실이 알려졌다.

제프 베이조스나 빌 게이츠의 경우 부부가 결혼 뒤 회사나 재단 등을 공동 창립해 운영하며 재산을 함께 늘려 왔다는 점에서 배우자에게도 상당한 규모의 재산 분할이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권혁빈 스마일게이트 창업자./뉴스1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 소송 1심 판결이 나오면서, 권혁빈 스마일게이트 비전제시최고책임자(CVO)의 향후 귀추도 주목받고 있다. 권 CVO는 아직 본격적인 이혼 소송에 돌입하지는 않았으나, 부인 이모씨가 권 CVO를 상대로 스마일게이트홀딩스 주식 33.3%에 대한 주식처분금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해 인용 판결을 받은 사실이 최근 알려졌다.

주식처분금지 가처분은 상대방이 가진 주식을 마음대로 처분하지 못하게 조치해 달라고 법원에 요청하는 것이다. 권 CVO를 상대로 한 부인 이모씨의 가처분 신청은 향후 이혼 소송에 따르는 재산 분할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다만 권 CVO가 가진 재산은 부부가 결혼 이후 공동으로 형성한 재산에 가깝기 때문에,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주식에 대한 재산분할이 쟁점이었던 최태원 회장이나 조현아 전 부사장 사례와는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는 시각이 법조계에서 나온다. 둘은 2002년 5월 결혼해 6월 스마일게이트를 공동 창업했고, 권 CVO 70%, 이씨 30%로 지분을 나눠 가졌다.

이씨는 창업 초기 대표이사도 맡았다. 첫째 딸을 임신하면서 권 CVO에게 대표이사직을 넘겼지만 그 후에도 2005년 12월까지 스마일게이트의 등기이사로 재직하며 경영에 참여했다. 권 CVO는 회사가 커감에 따라 자신의 지분을 늘리고 이씨의 지분을 줄이는 등 1인 체제를 확고히 하는 지배구조 재편을 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