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 부품·화학 사업을 주력으로 하는 중견기업 켐트로닉스(089010) 창업주 김보균 회장의 장남인 김응수 부사장이 올 1월부터 공동 대표이사에 이름을 올리면서 ‘2세 경영’의 문을 열었다. 그는 2014년부터 자율주행 사업을 미래 먹거리로 보고 자율주행 사업부를 진두지휘하는 등 선제적으로 사업 기반을 다져놨다는 평을 받는다. 그가 아버지와 공동대표에 오른 것은 자율주행 시대 개막이 임박하면서 그 공을 인정받은 것이란 분석이다.
1983년 신영화학으로 설립된 회사는 2000년 11월 화학(Chemistry)과 전자(Electronics)를 합친 현재 상호 켐트로닉스로 이름을 바꿨다. 삼성전자(005930)에 액정표시장치(LCD) 모니터용 터치 스위치 납품을 시작하는 등 전자부품으로 사업을 확장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 2007년에 코스닥 시장에 상장했다.
지난해 매출 5634억원, 영업이익 385억원을 올렸으며 올해는 각각 5889억원, 266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추정된다. 켐트로닉스 관계자는 “스마트폰, 가전 등 전방산업 수요가 줄었고 원자재 가격으로 비용이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회사는 전체 매출의 약 4%를 자율주행사업이 담당할 것으로 보고 있다. 자율주행 시대가 본격화되면 관련 매출도 늘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켐트로닉스가 자율주행 사업을 본격 모색했던 건 2013년부터다. 삼성전자, 삼성디스플레이 등에 집중된 매출 구조를 다각화하고, 하드웨어를 넘어 소프트웨어로 미래 성장 사업을 해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현재 켐트로닉스는 자동차와 사람, 사물 등이 연결되는 V2X(Vehicle to Everything) 관련 통신 모듈(부품 덩어리), 단말기 세트, 소프트웨어에 대한 기술·제품을 종합적으로 보유하고 있다. 서울, 제주, 세종, 판교, 새만금 고속도로 등에 인프라를 공급했다. 정부가 자율주행 통신 인프라 표준을 C-V2X(LTE·5G 이동통신망 이용)로 할지, 웨이브(근거리전용 무선통신을 통한 차량간 직접 통신 방식)로 할지 정한다면 본격적인 시장이 열릴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켐트로닉스 측은 “C-V2X, 웨이브 중 어떤 것이 표준으로 선정되더라도 하이브리드로 모든 단말기, 소프트웨어를 납품할 수 있기 때문에 경쟁력이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2027년 완전자율주행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아직은 V2X 통신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리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는 주로 카메라 기반의 자율주행 센서 판매에 집중하고 있다. 2020년 카메라 센서 기술을 보유한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 전문업체 비욘드아이를 인수한 것이 바탕이 됐다. 3분기 말 665억원에 달하는 현금(현금성 자산 포함)을 실탄으로 보유하고 있어 자율주행 관련 추가 투자 가능성도 점쳐진다.
SK㈜ C&C를 거쳐 켐트로닉스에 합류한 김 부사장은 일찌감치 소프트웨어로의 다각화를 주장해왔다. 3분기 말 현재 지분 4.53%로 최대주주 김 회장(13.36%)에 이은 2대주주다. 김 회장의 차남인 김응태 전무는 4.35%로 그 뒤를 잇고 있다. 현재 김 전무는 김 회장과 함께 핵심 자회사인 위츠 공동대표에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위츠는 삼성전기(009150) 무선충전 사업을 양수하면서 설립된 곳이다.
켐트로닉스 화학사업부는 올 초 반도체·디스플레이의 극자외선(EUV) 노광 공정에 쓰이는 핵심 재료인 포토레지스트(PR)의 핵심 원료를 구성하는 ‘프로필렌 글리콜 메틸 에테르 아세트산(PGMEA)’을 초고순도(순도 99.999%)로 생산하는 데도 성공했다. 포토레지스트는 2019년 일본이 한국으로 수출을 규제한 핵심 소재 3종 중 하나다. 이런 성과 역시 김 부사장의 공동대표 체제 개막과 맞물려 나왔다.
켐트로닉스 관계자는 “올해 말까지 PGMEA 제조 공장을 완공하고, 내년 말부터 본격 양산하는 게 목표”라며 “국내뿐 아니라 일본, 대만 등 해외에서도 관심을 보이는 등 수요가 생각보다 많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