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채 금리가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가운데, 국내 대기업이 내년 상반기에만 406조원의 회사채를 상환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적으로 기업들은 새로운 회사채를 발행해 기존 회사채를 갚는 차환 방식을 이용하지만, 시장 경색과 금리 인상으로 차환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시장에서는 회사채발 경제 위기가 올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2일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에 따르면, 매출액 기준 국내 500대 기업 중 올해 상반기 보고서에 회사채 발행 내역을 공시한 267개 기업이 내년 상반기까지 갚거나 차환해야 하는 회사채는 406조934억원에 달했다. 이는 전체 미상환 잔액의 37.4%에 해당한다. 내년 상반기에만 267개 기업이 발행한 회사채 37.4%를 갚거나 차환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들 중 현대차(005380)가 20조6621억원을 상환해야 해서 가장 많았다. 이는 연결기준으로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이 발행한 여신전문금융회사채(여전채)가 반영된 영향이다.

이어 한국전력(015760) 7조8403억원, SK(034730) 6조5708억원, 삼성생명(032830) 3조9353억원, POSCO홀딩스(005490) 3조4480억원, 한화(000880) 2조811억원, KT(030200) 2조508억원, SK텔레콤(017670) 1조7164억원, SK이노베이션(096770) 1조6700억원, LG화학(051910) 1조3850억원, 롯데쇼핑(023530) 1조2709억원, 대한항공(003490) 1조788억원, 호텔롯데 1조677억원, 현대두산인프라코어 1조501억원 등 16곳이 1조원 이상의 회사채를 갚아야 한다.

자료 : 금융감독원

대우조선해양과 현대엘리베이터, 코오롱글로벌(003070), 아시아나항공(020560), 동국제강(460860) 등은 내년 상반기에 보유 회사채 만기가 모두 도래한다. 삼성중공업(010140), 현대두산인프라코어, LIG넥스원(079550) 등은 보유 회사채 80%를 내년 상반기에 상환해야 한다.

지난달 30일 기준 국고채 3년물과 신용등급 AA- 회사채 3년물 간의 차이인 신용 스프레드는 176.2bp(1bp=0.01%포인트)로 집계됐다. 이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고치다. 신용 스프레드가 커지는 것은 시장이 회사채 투자 위험을 높게 본다는 뜻으로 그만큼 기업의 자금 조달비용도 높아진다. 회사채에 대한 시장 불신이 갈수록 커지면서 금리차가 벌어진 것이다.

이경록 신영증권 연구원은 “신용금리는 이미 기준금리를 수차례 더 인상한 수준에 도달해있다”며 “내년 상반기 은행채, 여전채, 회사채 만기 도래 규모가 커 세밀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기업들도 내년 회사채 차환이 제대로 이뤄질지 우려하고 있다. 회사채 발행 금리가 급등하고 수요 부진으로 급격한 시장 경색이 발생해 차환이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채권시장에서는 최고 우량기업인 AAA 신용등급을 보유한 기업도 회사채 발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시장 경색이 내년까지 이어질 경우 차환 발행에 실패한 기업은 대규모 회사채를 보유 자금으로 상환해야 한다.

국고채와 회사채 금리 차이./조선DB

차환 발행에 성공하더라도 이자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삼성중공업은 지난달 15일 2년물 회사채를 연 7.1%(500억원)에 발행했고, 부산롯데호텔도 연 8.5% 금리에 1년물을 총 400억원어치 발행했다. AA- 등급 3년물 기준으로 연초 연 2% 중후반이었던 금리가 1년 만에 3~4배 뛴 것이다.

1년물 금리가 연 8%를 넘어선 것은 흔치 않은 일로, 기업이 차환을 위한 회사채를 발행하려면 기존보다 3~4배에 달하는 이자 비용을 감내해야 한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내년에 채권시장에 유동성이 공급되더라도 시장이 정상화되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며 “신용 스프레드가 눈에 띄게 좁혀져야 시장이 안정기를 찾았다고 볼 수 있다. 그전까지는 많은 대기업들이 회사채 차환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