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서부 콜로라도주의 작은 도시 ‘볼더(Boulder)’. 로키산맥 기슭에 위치해 ‘마일 하이 시티(Mile High City·해발 고도 1600m가 넘는 도시)’로 불리는 이곳이 기술창업의 성지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 최대 액셀러레이터(AC·초기 유망기업을 발굴해 투자 및 서비스를 제공하는 창업기획자) ‘테크스타(TechStars)’가 이곳에 터를 잡고 창업가들을 지원하기 시작하면서다. 미국에서 가장 과학기술 인재 비율이 높은 특성과 지역 특유의 ‘먼저 베풀기(Give First)’ 문화에서 테크스타는 가능성을 발견했다.
테크스타는 테크 분야 스타트업에 초기 투자하는 글로벌 AC다. 와이콤비네이터(Y-Combinator)와 함께 미국 최초이자 최대 AC로 꼽힌다. 2006년 볼더에서 시작해 현재 17개국 50개 도시에서 AC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날까지 총 3090개의 스타트업이 테크스타 AC 프로그램을 거쳐갔다.
테크스타를 거쳐간 스타트업의 기업가치는 총 1510억달러(약 200조원)다. 우버, 센드그리드 등 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 유니콘 기업 19개, 기업가치 1억달러 이상 아기 유니콘 기업 100여개가 배출됐다. 테크스타 창립자 중 한 명인 데이비드 코헨 공동 창립자를 지난달 테크스타 볼더 본사에서 만났다. 아래는 일문일답.
-AC라는 개념이 탄생하기 전부터 이 일을 시작했다. 계기가 궁금하다.
“저는 평생을 기업가로 살았다. 창업도 여러 차례 해보고 엑시트(투자금 회수)도 했다. 테크스타 설립 직전엔 엔젤투자를 했는데 항상 어딘가 아쉬움이 남았다. 커피숍에서 창업가들을 만나 피칭을 듣고 투자금을 주고 나면, 그들에게 돈이 더 필요하게 될 때까지 아무 소식도 들을 수 없었다. 이 방법이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았다.
나는 많은 돈을 벌고 싶은 동시에 스타트업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의 커뮤니티에 스타트업들을 끌어들인 다음 성공한 기업가들이 스타트업의 멘토가 되어 주고 이들에게 투자하도록 하는 방법을 고안해 냈다.”
-성공적인 스타트업 커뮤니티의 조건은 무엇이라고 보나.
“무엇보다 커뮤니티가 열려 있어야 한다. 원한다면 누구든지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이 커뮤니티는 톱 다운(Top-down·하향식) 방식으로 누군가에 의해 통제되어선 안 된다. 기업가들이 스스로 주도해야 한다. 스타트업 커뮤니티는 기업가 외에는 누구도 이끌 수 없다. 지역 사회에서 더 나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무언가를 만들고 있는 기업가들이 자발적으로 이끄는 커뮤니티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20년 뒤를 바라보는 장기적인 관점이다. 15년 전 볼더에서 처음 액셀러레이팅을 시작했을 땐 스타트업과 투자자가 얼마 되지 않았다. 지역 벤처 펀드도 몇 개뿐이었다. 그러나 오늘 날엔 매우 활기차게 변했다. 당장의 현실에 조급해 하지 않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판단했기 때문에 이런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고 본다.”
-대표적인 사례가 있나.
“테크스타가 500만~600만달러(약 66~79억원)를 투자한 스타트업이 하나 있었다. 우리로서는 매우 큰 투자였지만 사업이 실패하고 있었다. 결국 그들은 기업을 매각하기로 결정했고 두 곳으로부터 인수 제안을 받았다. 한 곳은 구글이었고, 한 곳은 아마 들어본 적 없을 유명하지 않은 A기업이었다.
인수 금액은 A기업의 제안이 더 컸지만 그들은 구글에 인수되기를 바랐다. 더 좋은 조건의 일자리를 지원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구글에 인수됐다는 것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본 것이다. 대신에 A기업보다 훨씬 적은 200만달러(약 27억원)만 받을 수 있었다.
어찌 보면 투자 실패라고 말할 수 있지만 우리는 그들에게 좋은 선택이 무엇인가에 집중했다. 결국 그 스타트업은 자신의 뜻대로 구글에 회사를 매각했고 테크스타의 가장 큰 지지자가 됐다. 그리고 자신들 기술의 일부를 A기업에 팔아 최초 제안보다 더 큰 금액을 받았다. 이를 예상하고 내린 결정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우리는 평생의 지지자도 얻고 더 많은 돈도 벌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그들에게 도움이 되려 한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매년 각 도시에서 AC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참가 팀 선정 기준이 궁금하다.
“총 여섯 가지가 있다고 치면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팀’이다. 창업 아이디어는 가장 나중에 고려되는 것이고 세상을 바꾸고 싶어하는 훌륭한 팀인지가 가장 중요하다. 재능과 통찰력 있어야 하고 이것을 해낼 수 있다고 믿는 신념이 있어야 한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우리는 그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것은 무엇인지, 무엇이 그들이 이 목표를 달성하도록 만드는지, 그게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지를 묻는다.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팀이라면 그 다음은 ‘시장’을 살펴봐야 한다. 우리는 변화하지 않는 시장에 투자하고 싶지 않다. 역동적인 시장이 투자하기 좋은 시장이다. 그리고 우리가 관심을 갖는 시장이어야 한다. 우리는 세상에 좋은 일을 하고 싶다. 다섯 번째는 ‘발전’이다. 우리는 발전하지 않는 창업가에게는 투자하지 않는다. 자금이 없어도 발전할 의지가 있다는 것을 반드시 보여줘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이 아이디어다. 가끔 정말 기발한 창업 아이디어들이 있긴 하지만 우리는 보통 가장 마지막으로 본다.”
-다양성도 고려하나.
“물론이다. 우리는 더 많은 여성 기업가를 키워내는 데 매우 집중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정말 좋은 결과를 보고 있다. 현재 투자사 가운데 25%가 여성 주도 기업인데 우리는 50%에 가까워지려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인종의 다양성에도 특별히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다양성을 추구하는 이유는 단지 그것이 도덕적으로 옳기 때문만이 아니라, 다양한 구성원으로 이뤄진 팀들이 경제적으로도 더 나은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이는 데이터를 통해 매우 쉽게 알 수 있다. 우리는 궁극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최고의 기업가들을 원한다. 여성, 소수인종과 같이 과소평가되는 집단에서 실제로 많은 좋은 기업가들이 탄생하고 있다.”
-AC프로그램은 어떻게 진행되나.
“우리의 AC 프로그램은 매우 초기 단계의 테크 스타트업로부터 신청을 받은 뒤 배치(Batch)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각 도시의 프로그램마다 한 번에 12팀을 뽑고 그들은 3개월간 우리와 함께한다. 우리는 전 세계에 8000명의 멘토로 구성된 글로벌 커뮤니티가 있다. 각 지역 멘토 커뮤니티도 100~200명 규모로 구성돼 있다. 참가 팀들에게 초기 투자금과 함께 이 인프라를 활용한 멘토링을 지원한다. 그들은 참가 팀이 사업 아이템을 구체화하고 초기 고객을 확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멘토들은 심지어 때때로 창업 팀에서 함께 일하기도 한다. 그 3개월 동안에는 거의 기적이 일어난다. 참가 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화해 대형 투자자들로부터 후속 투자를 받을 준비를 마치게 된다. 이것이 우리가 3개월 동안 하는 일이다. 우리는 이들의 공동 창립자처럼 일하고 있다. 우리는 이 모델을 사용하여 50개 도시가 각 12개 팀씩, 매년 600개 스타트업을 지원하고 있다.”
-최근 글로벌 투자 경색으로 후기 스타트업들이 특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테크스타는 이들 기업에 어떤 조언을 하나.
“올해 시작된 투자 경색은 아마 후기 스타트업들이 더 많이 느낄 것이다. 최근 몇년 간 시장에 돈이 풀리면서 이들의 기업가치가 어느정도 부풀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후기 스타트업들에게 부풀려진 기업가치를 고수하려고 시장과 맞서지 말고 한 번쯤은 고통을 감수하고 눈높이를 조정하라고 조언한다. 그리고 사업의 기반부터 다시 단단히 다지고,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사업 모델을 구축하라고 조언한다. 이전엔 가능성만으로도 투자 유치가 가능했지만, 이젠 불투명한 사업모델을 위한 자본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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