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만기 한국무역협회 부회장은 “교통안전 효과도 불분명하고 세계에서 유래를 찾기 어려운 제도인 안전운임제는 즉각 폐지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 부회장은 9일 ‘제2차 무역산업포럼’에서 “안전운임제에 따르면 계약당사자(운송사와 차주)도 아닌 화주가 물건 운송을 부탁했다는 이유만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정 부회장은 “대기업 하청업체나 식품·가구·고무·금속가공 등 영세 수출업체들은 운송비 증가 등을 수출 경쟁력 약화의 핵심 요인 중 하나로 지적하고 있다”며 “영세 수출업자들은 차주나 정부의 눈치를 보면서 어려움을 제대로 호소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인천 연수구 인천신항에서 컨테이너 선적 작업이 진행되는 모습. 2022.11.1/뉴스1 ⓒ News1 송원영 기자

정 부회장은 수출 경쟁력 약화가 결국 일자리 감소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전 세계 수출에서 우리나라가 차지하는 비중이 2015년 3.2%에서 2020년 2.9%로 떨어진 뒤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며 “점유율이 0.1%포인트 낮아지면 취업인원은 13만9000명 줄어드는 것으로 분석돼 일자리가 41만6000개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책 결정자들은 냉정한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며 “시장 왜곡을 초래하는 규제보다 민간의 자율적 역량과 시장의 힘을 믿고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했다.

안전운임제는 ’물류업계 최저임금제’로 불린다. 거리에 따라 화물차주의 최소 운임을 보장하고 이를 지키지 않으면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이 골자다. 안전운임제는 올해 말로 일몰될 예정이나, 민주노총 화물연대본부를 중심으로 제도를 영구·확대 운영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다만 안전운임제 도입 이후 기업들의 수출입 물류 경쟁력이 약해진 것으로 분석됐다. 김병유 무역협회 회원서비스본부장의 설명에 따르면 기업의 매출 대비 물류비 비중은 2005년 9.7%에서 2018년 6.5%까지 지속해서 하락했으나, 2020년 안전운임제 도입 이후 7.1%로 상승 전환했다. 2021년 물류대란을 고려한다면 기업의 매출 대비 물류비 비중은 더 커졌을 것으로 김 본부장은 예상했다. 안전운임제 도입 이후 컨테이너 내륙 운송 운임은 25%에서 42%가량 증가하기도 했다.

이밖에 ▲높은 도로운송비 ▲지입제를 비롯한 불합리한 시장구조 ▲물류 인건비 증가 ▲저조한 디지털 전환 수준 등도 문제점으로 꼽혔다. 김 본부장은 “무역협회의 올해 4분기 수출산업경기전망지수(EBSI) 조사에 따르면 기업들은 원자재 가격 상승(25.4%)에 이어 물류비 상승(18.0%)을 두 번째로 큰 어려움으로 꼽았다”며 “무역협회 수출입물류 종합대응센터에도 화물적체로 인한 비용 증가, 화물운송 적시성 저하 등의 물류 애로가 1220건 접수됐다”고 했다.

박민영 교통정책경제학회 교수 역시 이날 ‘안전운임제도의 개선방안 연구’를 발제하며 “기업의 물류비 증가는 결국 소비자에게 전가되고 국민경제에도 영향을 주는 만큼, 안전운임제가 지속가능한 제도로 발전할 수 있도록 사회적 토론과 합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정책토론 과정에서 기업 관계자들은 “물류대란으로 항공 및 해상운임이 많이 오른 가운데 육상 운임마저 급등해 물류비 부담이 매우 크다”, “시멘트 업계 육상 물류비가 안전운임제 시행 이후 40% 넘게 인상됐음에도 불구하고 운송거부 등으로 물류비 추가 인상 압박이 거세다” 등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무역협회는 기업의 물류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안전운임제 일몰 후 새로운 제도 도입 ▲주요 항만 및 공항 배후지역 창고에 대한 주52시간 근무제 특례업종 지정 및 외국인노동자 고용 확대 ▲물류 디지털 전환(DT) 지원 ▲기업 물류현황 정례조사 등의 정책을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