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6일 일본 교토 중심지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1시간가량 달려 도착한 게이한나 오픈 이노베이션 센터. 이곳은 외곽 지역인데다 이른 오전임에도 6일과 7일 이틀간 열린 ‘일본 교토 스마트시티 박람회 2022′에 참가하려는 젊은 기업가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아베 타츠야 ‘헬스테크 랩’ 대표는 교토대 공학부 졸업생으로, 2019년에 학교의 지원을 받아 창업했다. 개인 건강정보를 스마트폰에 저장하고 병원과 공유하는 시스템을 제공한다. 아베 대표는 “창업 이후에도 교토대 내 헬스케어 연구회에서 기업(파트너)을 소개받고 있고, 교토대 학생들을 직원으로 채용하고 있다”며 “교토는 대학 덕분에 연구 인력이 풍부하고 지역 밀착형 사업을 하기에 유리하다”고 말했다.

지난달 6일 '스마트시티 엑스포 2022'에서 만난 헬스테크랩의 아베 타츠야 대표. 그는 "교토 시민들의 건강 관리에 이바지하고 있다는 보람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교토=신소현 PD

전자기파로 화학제품을 만드는 공정을 판매하는 마이크로웨이브케미칼 역시 대학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요시노 이와오 최고경영자(CEO)는 오사카대 공학대학원에서 전자기파에 대해 연구하고 있던 츠카하라 야스노리를 만나 2007년에 함께 회사를 차렸다. 그는 오사카대 내에 있는 본사에서 기자와 만나 “창업 직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자금 조달이 쉽지 않았지만, 대학과 정부의 지원으로 위기를 넘겼고 지금은 상업화 단계에 진입했다”라고 말했다.

일본 오사카와 교토 등이 속한 간사이(関西) 지역이 스타트업 육성에 팔을 걷어부쳤다. 그 중심에는 노벨상 수상자만 10명을 배출한 교토대 등 대학이 있다. 한국에서는 관광 도시로 이름난 곳이지만, 일본 내에서는 연구 도시로 손꼽힐 만큼 유수의 대학과 인재를 보유하고 있다.

오사카·교토·고베의 연구인력은 현재 약 1만6670명으로, 수도인 도쿄(1만6980명)과 비슷한 수준이다. 이전까지는 대학에서 순수 기초연구에만 힘쓰던 학생들이 대학과 정부의 지원에 힘입어 사회에서 기술을 입증하고, 창업에 나서면서 지역 경제에 기여하고 있다.

2014년 설립된 교토대 이노베이션 캐피탈(교토iCAP)은 2016년 160억엔(약 1500억원)의 펀드를 조성한 데 이어 지난해 181억엔 규모의 2호 펀드를 출범시켰다. 이곳은 교토대 연구 기반으로 설립된 스타트업을 지원한다. 쿠즈미 코 교토iCAP CEO는 “일본 대학의 높은 기초연구 수준이 창업으로 연결되지 않고, 공격적인 자본도 (대학 연구엔) 공급되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며 “일반 벤처캐피탈의 경우 투자금 회수가 주 목적이지만, 교토ICAP는 대학의 연구성과를 사업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대학 연구의 성과에 대해 이해도가 높아 더욱 쉽게 투자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강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교토iCAP는 2개 펀드를 통해 현재까지 54개사에 116억엔을 투자했다. 교토대가 강점을 보이는 바이오(37%)와 기계·소재·에너지(26%), 헬스케어·디바이스(15%) 분야를 집중 지원했다. 시드(회사 설립·59%)와 얼리(초기 투자·22%) 단계 기업을 주로 선정한다는 것도 특징이다.

쿠즈미 CEO는 “민간 벤처캐피탈의 경우 기간이 짧은 펀드가 많은데, 이 경우 성과가 비교적 늦게 나타날 수 있는 대학발 스타트업에 지원하는 것을 꺼릴 수 있다”며 “이를 채우기 위해 우리는 일부러 시드 단계의 기업 지원에 집중하고, 펀드의 존속기간 역시 12~15년으로 길게 설정했다”고 말했다.

쿠즈미 코 교토대 이노베이션 캐피탈 최고경영자(CEO)는 대학 벤처캐피탈이 지역 경제에도 이바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고용 창출 효과가 발생한다는 점이 가장 크고, 벤처기업이 생겨 거래처를 개척할 수 있다는 것도 긍정적 효과"라며 "학생들은 대학에서만 연구할 수 있었지만, 이를 벤처에서도 이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교토=신소현PD

간사이 청년들은 점차 학교 밖으로 나오고 있다. 일본 경제산업성 긴키경제산업국에 따르면, 최근 2년간 287개의 스타트업이 생겼다. 이 중에서 대학에서 출범한 스타트업은 전체 40% 수준인 115개에 달한다. 코 CEO는 “이전까지 교토대 학생들은 창업에 소극적이었고, 졸업 후 기업이나 연구소로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며 “지금은 벤처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간사이 지역이 바이오와 헬스케어 등 강점을 보이고, 관련 연구 인재가 풍부하다는 점에 일본 정부도 주목하고 있다. 2020년 7월 스타트업 거점 도시로 선정한 이후 지원은 성과를 내고 있다. 일본무역진흥기구(JETRO) 오사카 본부가 지난 4월 지역 내 스타트업 279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계속 지역에 남아있겠다는 응답이 55%를 차지했다. 수도인 도쿄로 가겠다는 응답은 14%였고, 알 수 없다는 응답은 31%였다.

곤도 켄이치로 긴키경제산업국 과장은 “55%가 지역에 남겠다고 답한 데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며 “간사이 스타트업이 됴쿄 등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숫자가 적다보니 경쟁력만 있다면 투자를 유치할 수 있는 가능성은 훨씬 높다”고 말했다. 긴키경제산업국은 지역 내 스타트업을 선정해 집중 지원하는 ‘J스타트업’ 사업을 진행 중인데, 현재 31개사에서 올해 중 15개사를 추가할 예정이다.

민관 합동 스타트업 지원 기구인 교토지혜산업창조의숲도 시드 단계의 스타트업 지원에 집중하고 있다. 카와구치 타카시(왼쪽) 차장은 "스타트업 생태계를 키우기 위해선 가장 하위에 있는 시드 단계의 스타트업을 많이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토=신소현PD

졸업 후 진로가 구체화되지 않은 학생들까지 지원해 창업을 이끌어주는 기구도 있다. 민관 스타트업 지원 기관인 교토지혜산업창조의숲의 카와구치 타카시 차장과 다나카 쇼타 주임은 “처음부터 확실한 목표와 비전을 갖고 있는 이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도 많고 이들까지 다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 기관의 특징”이라며 “이전까진 챌린지 정신이 강한 학생들은 도쿄로 갔지만, 우리와 같은 기관이 생겨나고 적극 지원하자 교토에서도 창업할 수 있다는 인식이 생겼다”고 말했다.

간사이 지역의 스타트업 생태계는 이제 활성화 되고 있는 만큼, 해결해야 할 과제도 있다. 연구 분야에 치중된 인재 풀을 확대해야 한다는 점이다. 곤도 긴키경제산업국 과장은 “대학이 배출하는 연구 인력의 규모와 수준은 훌륭하지만, 이 연구 실적을 사업화할 수 있도록 돕는 재무, 법률, 마케팅 등 다른 분야의 인력은 수도 대비 부족한 상황”이라며 “연구 인력만으로 스타트업을 시작할 수는 있지만, 기업 규모를 키우기 위해선 다른 분야의 인재 육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카와구치교토지혜산업창조의숲 차장 역시 “연구자는 많지만 실제로 사업, 상장 등을 해본 사람이 부족하다”고 했다.

노벨상 배출 日 대학 기술력, 투자·지원 받아 스타트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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