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이 미래 성장사업 중 하나로 추진 중인 자동차 전장(전자장비) 분야에 박차를 가하면서 그룹 싱크탱크에도 관련 팀을 신설했다.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부회장은 지난 6월 유럽 출장에서 자동차 산업이 급변하고 있다는 점을 느꼈다며 관련 사업 투자에 대한 강화 의지를 내비친 바 있다.

23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그룹 싱크탱크인 삼성글로벌리서치(옛 삼성경제연구소)는 최근 전장사업 관련 팀을 신설하고 연구 인력을 충원하고 있다. 이 팀은 전기차를 포함한 완성차와 전장 관련 연구를 수행할 예정이다. 전장사업을 영위하는 그룹 내 계열사에 경영 컨설팅도 제공한다. 삼성글로벌리서치가 완성차와 전장 관련 팀을 만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삼성그룹이 전장 분야를 미래 성장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 부회장은 지난 6월 유럽 출장을 마친 뒤 귀국해 기자들과 만나 “자동차 업계 변화, 급변하는 상황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이 발언을 두고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전장 사업 투자 확대 의지를 내비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 부회장은 지난 6월과 9월 두차례 전장 계열사인 하만 카돈을 방문할 정도로 관련 사업에 관심이 높다. 하만은 2016년 삼성전자가 9조4000억원에 인수한 회사다.

이재용(오른쪽 두번째)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9월 8일(현지시간) 멕시코에 위치한 하만 공장을 방문, 관계자로부터 사업 현황을 보고 받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재계 관계자는 “삼성이 그동안 자동차 관련 사업 투자에 다소 소극적이었는데 올해부터 사업을 확대하는 기류가 강하다”며 “완성차 시장에 진출하지 않더라도 첨단 자동차 분야에서 지속적인 성장세를 충분히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삼성그룹의 전장사업은 하만과 삼성전기(009150), 삼성SDI(006400) 등이 전담하고 있다. 하만은 디지털 콕핏(디지털화된 자동차 운전 공간), 5세대 이동통신(5G) 텔레매틱스, 오디오 분야 등을 중심으로 전장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최근에는 굵직한 고객사를 확보했다. 도요타와 5G 탤레매틱스 공급 계약을 체결한 것이 대표적이다. 계약 규모는 1000억원 안팎으로 추정된다. 지난해에도 BMW와 전기차 5G 텔레매틱스 공급 계약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텔레매틱스는 차량 통신의 허브 역할을 해주는 장치로 위치추적, 원격 차량 진단 등의 기능이 있다.

삼성전기는 차량용 적층세라믹콘덴서(MLCC) 등의 전장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MLCC는 전기를 저장했다가 반도체에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해 원활하게 작동하도록 하는 부품이다. 삼성전기는 지난해 6월 동일 크기 기준 세계 최고 용량의 MLCC를 개발해 글로벌 전기차 업체에 납품하기 시작했다. 이어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에 들어가는 전장용 MLCC 2종을 개발하기도 했다.

삼성전기는 카메라모듈 시장에서도 입지를 확대하고 있다. 자동차에 장착되는 카메라모듈은 도로 신호, 표지판, 장애물 등을 촬영해 전기차의 두뇌 역할을 하는 프로세서로 보내는 핵심 부품이다. 삼성전기는 지난 6월 테슬라에 카메라모듈을 납품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삼성SDI는 천안공장에 4680 배터리 파일럿(시험생산) 라인 증설을 추진하는 등 제품군 확대에 나섰다. 4680 배터리는 지름 46㎜, 길이 80㎜의 원통형 배터리를 말한다. 삼성SDI가 주로 생산하는 2170(지름 21㎜, 길이 70㎜) 대비 용량은 5배, 출력은 6배 높이고 주행거리는 16% 늘린 것이 특징이다. 4680 배터리는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가 주로 사용한다. 삼성SDI는 글로벌 완성차업체 스텔란티스와 합작으로 미국 인디애나주 코코모시에 3조원 이상을 투자해 배터리 공장을 건설 중이다.

업계에서는 전장 분야 추가 인수합병(M&A) 가능성도 제기된다. 삼성전자는 하만을 통해 지난해 3월 미국 자동차-사물간통신(V2X) 기업 ‘사바리’, 올해 2월 독일 헤드업디스플레이(HUD) 소프트웨어 기업 ‘아포스테라’를 인수했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전장 기업에 대한 적극적인 M&A와 협업을 통해 부족한 전장 사업 라인업을 보강하고 시장 지배력을 높일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