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년보다 이른 추위가 찾아오면서 보일러 업계가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국내 보일러 기업 ‘투 톱’ 중 하나인 경동나비엔(009450)은 지난해 처음으로 매출 1조원대를 기록했고, 올해 매출 2조원을 바라보며 규모를 키우고 있는 가운데 오너 일가가 그룹 체질 개선에 나섰다.

경동그룹 창업주 고(故) 손도익 회장의 세 아들은 각각 경동홀딩스, 경동원, 원진으로 계열을 분리해 운영하고 있다. 장남 손경호 경동도시가스(267290) 명예회장은 경동홀딩스를 통해 경동인베스트(012320)를, 경동인베스트를 통해 다수의 회사를 지배하고 있다. 3남 손달호 원진 회장은 지분 99.5%를 보유한 원진을 통해 원진월드와이드와 경동개발을 보유하고 있다.

그래픽=손민균

◇ 손연호 회장, 나비엔 중심으로 사업 재편

차남 손연호 경동나비엔 회장의 지배기반은 경동원이다. 손 회장은 친족, 특수관계법인 등과 경동원 지분 94%를 보유하고 있다. 경동원은 경동나비엔 지분 57%를 갖고 있다. 경동나비엔 아래로는 지분율 100%의 경동에버런, 경동티에스, 경동폴리움이 종속회사로 있다. 경동원이 이들 계열사의 지주회사인 셈이다.

손 회장은 그간 경동원의 사업을 재편하면서 지배구조를 다져왔다. 경동원은 경동나비엔 등을 아우르는 지주사이면서 보일러 부품, 설비 관련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그러다 2019년 네트워크 사업부문 중 보일러 컨트롤러 사업부문을 ‘경동전자’로 분할해 법인을 세운 뒤 이듬해 경동나비엔의 자회사로 흡수합병했다. 2021년에는 경동원 세라텍 사업부의 PL사업부문을 ‘경동폴리움’으로 물적분할해 경동나비엔 자회사로 편입했다.

사업부를 일부 떼어낸 경동원은 아직 네트워크 사업부와 세라텍 사업부를 운영하고 있다. 각각 가전 기기를 제어하는 홈네트워크 설루션 사업과 단열재 생산·판매 사업을 하고 있다.

◇ 내부거래 개선·수직계열화에 지배력 강화 효과도

손 회장의 사업 재편은 그룹사 체질 개선을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경동원은 대기업에 속하지 않아 정부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이 아니지만, 그간 경동나비엔과의 내부거래가 과다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최근 10년간 경동원이 경동나비엔으로부터 벌어들인 매출액은 전체 매출액(별도 기준)의 60% 안팎이다. 지난 2017년에는 2611억원의 별도 매출 가운데 1688억원(65%)을 경동나비엔에서 내며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후 내부거래 비율은 점차 감소해 2020년엔 그 비율이 처음으로 48%까지 떨어졌지만, 이듬해 56%로 다시 올랐다.

그래픽=손민균

지난 5월엔 계열사 부당 지원과 관련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제재를 받기도 했다. 경동원이 10년 넘게 경동나비엔에 일반 가격보다 30% 낮은 가격에 외장형 순환펌프를 판매해온 행위가 적발된 것이다. 경동원과 경동나비엔은 시정명령과 함께 각각 24억3500만원, 12억45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경동나비엔이 경동원으로부터 부품 등을 저가에 대량으로 조달하면서 손 회장 일가의 배를 불려주는 구조인 셈이다.

경동나비엔 관계자는 사업 재편과 관련해 “보일러는 핵심 부품을 외부에서 사올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온도 등) 제어 기술이 기업의 핵심 기술이고 자체 개발이 많기 때문에, 경동나비엔을 중심으로 일련의 공정을 수직계열화하고 기업의 체질을 개선하려는 취지”라고 말했다. 경동원과의 내부거래 비중 증가에 대해선 “경동나비엔의 매출이 늘어나면서 관계사들의 관련 매출도 늘어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년 간의 사업 재편으로 손 회장은 경동나비엔에 대한 지배력도 키웠다. 경동원의 사업부를 떼어내 경동나비엔에 편입시키는 과정에서 경동나비엔의 주식을 추가로 확보했기 때문이다. 경동원이 경동전자와 경동폴리움으로 사업부를 분할하기 전인 2018년 말에는 경동나비엔에 대한 경동원 지분이 50.51%였지만, 2년 간의 사업재편 이후 지분율은 56.72%로 올랐다.

◇ 누나보다 먼저 경영 뛰어든 남동생… “승계 아직”

손 회장이 지배력 강화에 나서면서 경동원 그룹 3세 승계에도 관심이 쏠린다. 현재 손 회장의 아들 손흥락(41) 경동나비엔 상무와 맏딸 손유진(44) 경동나비엔 상무보가 회사에 재직 중이다.

손 상무는 미국 위스콘신메디슨대 경제학과 출신으로, 지난 2008년 27세의 나이로 경동나비엔에 입사해 현재 구매조달 총괄직을 맡고 있다. 2017년 이사회에 합류했다. 손유진 상무보는 이화여대 국문학 학사·사회학 석사,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박사 출신으로, 경동나비엔에는 동생보다 늦은 2014년에 입사해 현재 경영지원부문장을 맡고 있다.

미등기 임원으로 올라 있는 손유진 상무보와 달리 손흥락 상무는 사내이사직을 이어오고 있는 데다 경영수업도 비교적 일찍 시작한 만큼, 경영권은 손흥락 상무가 이어받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진다. 경동나비엔 관계자는 “아직 승계와 관련해선 결정된 사항이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