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에 묶인 대규모 자금을 현금화해 신사업에 투자하려던 대기업의 투자 전략에 빨간불이 켜졌다. 최근 리츠(REITs·부동산투자회사)를 통해 보유 오피스를 유동화하는 기업이 늘고 있는데, 글로벌 경기 침체와 금리 인상 등이 겹치면서 투자자를 모집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5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SK(034730)그룹의 부동산 관리 전문회사 SK리츠는 서울 종로구 종로타워를 인수하기 위해 최근 공모채 발행 수요예측을 진행했으나 미달됐다. SK리츠는 1년물 960억원어치를 모집했는데, 910억원의 주문을 받는데 그쳤다.
SK리츠는 당초 종로타워 인수 자금 마련을 위해 공모채 1년물 1000억원, 2년물 500억원 발행을 검토했었다. 이번에 발행금액을 960억원으로 줄여 수요예측을 진행했으나 미달됐다. 금리는 민평금리(채권평가사가 책정한 평균금리)에 0.40%포인트(P)를 가산한 연 5% 초반으로 높은 편이었다. 시장에서는 금리 인상으로 기관 투자자들의 투자 관망세가 짙어지면서 흥행에 실패한 것으로 보고 있다.
IB업계에서는 신용등급이 AA-로 높고 SK그룹이 운용하는 리츠라는 점에서 공모채 흥행 실패는 의외라는 반응이 나온다. SK리츠는 공모채 흥행에 성공할 경우 발행 금액을 1500억원까지 증액할 계획이었다. 미매각 물량이 많지는 않지만 자금 조달 계획에 차질을 빚을 전망이다.
SK리츠는 종로타워 인수자금 약 7500억원을 공모채와 전자단기사채(전단채) 발행으로 마련하기로 했다. 이후 종로타워를 리츠에 편입해 유상증자를 한 뒤 이를 상환할 계획이었다. 향후 공모채와 전단채 발행은 물론 종로타워 편입을 통한 유상증자 역시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한화(000880)그룹의 보험사 오피스를 담은 한화리츠 역시 상장 작업이 더디다. 한화리츠는 지난달 영업 인가를 받고 내년 1분기 중 상장할 것으로 전망됐으나, 일정이 연기된 것으로 전해진다. 한화리츠에는 서울 여의도 한화손해보험(000370)빌딩, 한화생명(088350) 노원사옥, 한화생명 평촌사옥 등이 담겼다.
한화리츠는 당초 지난 7월 KB증권과 상장주관사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리츠 자산 가치에 대한 의견 차이로 계약을 해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다른 증권사들과 협상을 진행하고 있지만, 아직 주관사를 찾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화리츠는 향후 여의도 63빌딩과 한화생명 서초사옥 등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지면서 시장의 기대를 받았으나 최근 기관 투자자들이 리츠 투자를 외면하면서 투자금 모집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삼성도 삼성생명(032830)이 보유한 빌딩을 기초자산으로 한 리츠 상장을 추진 중이다.
보통 금리 상승기에는 리츠가 부동산을 매입할 때 빌린 차입금 이자가 늘어나 수익성이 저하된다. 여기에 글로벌 경기 침체와 부동산 시장 불황이 겹치면서 리츠 투자 심리가 더욱 악화됐다. 지난 9월 한달간 국내 상장 리츠 10개 종목을 담은 KRX 리츠 TOP 10지수는 7.44% 하락했다. 지난 6월과 비교하면 3개월 사이 약 16% 내렸다. 최근 대신자산신탁이 운용하는 대신글로벌코어리츠도 상장 시점을 연내에서 2023년 내로 연기했다.
삼성과 SK, 한화, 두산 등 대기업들은 부동산 자산에 묶여있는 막대한 자금을 유동화해 신사업에 투자하고 있다. 오피스 유동화가 어려워지면 기업들의 자금 조달이 더 어려워지게 된다.
IB업계 관계자는 “SK리츠는 연기금 등 기관 투자자들이 대거 참여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는데, 공모채 수요예측이 미달됐다는 것은 예상보다 리츠 시장이 어렵다는 의미”라며 “당분간 수천억원의 투자가 필요한 대기업 리츠는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