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세기업 A사 대표는 코로나 사태 후 정보 시스템을 제대로 구축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전사자원관리(ERP) 관련 특허를 보유한 국내 대기업 출신 IT전문가로부터 1시간 동안 자문을 받았다. 대표는 이를 통해 시중에 어떤 ERP 제품이 있는지, 회사에 어떤 제품이 맞을지, ERP 도입을 위해 회사가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 정리해볼 수 있었다.
2년 뒤를 목표로 상장을 준비 중인 스타트업 B사는 최근 대형 증권사 출신 기업공개(IPO) 전문가로부터 족집게 컨설팅을 받았다. 전 세계적으로 어려운 유동성 환경 속에서 어떤 사업을 구조조정 하면서 장기적인 성장 전략을 모색할 수 있을지 자문을 받았다.
자금력이 상대적으로 풍부한 대기업·공공기관 등이 대형 컨설팅사를 통해 받던 전문가 네트워크 서비스(Expert Network Service, ENS) 시장이 중소기업으로 확산하고 있다. ENS는 급변하는 비즈니스 환경 변화 속에서 전문 지식, 새로운 지식이 필요한 기업과 이에 대한 통찰력을 갖춘 각 산업 분야 전문가 집단을 연결해 이들이 자문을 제공할 수 있는 허브 역할을 하는 서비스를 말한다.
대면뿐 아니라 서면, 화상 등의 방식으로 연구를 수행한다. 1998년 미국 GLG(거슨 리먼 그룹)에 의해 본격 태동해 해외에선 활성화돼 있지만, 국내에서는 시간당 100만원에서 최대 1000만원에 달하는 비싼 자문료 때문에 대기업 중심으로 수요가 있었다.
분위기가 달라진 건 2년 넘게 지속된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영향이 컸다. 회사 규모를 막론하고 시장 예측이 어려워지고 해외 시장 진출·확장 시 이동 제한 등 조치로 시장조사나 현장 실사가 물리적으로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시장조사기관 전문가 네트워크 마켓 사이징의 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해 전 세계 ENS 매출은 19억2000달러(2조7500억원)로 전년 대비 21% 증가했다. 2013년 이래 가장 높은 연간 성장률이다.
주로 대기업 등으로부터 컨설팅 의뢰를 받거나 대기업으로부터 의뢰를 받은 대형 컨설팅사의 외주를 받던 ENS 업체들도 중소기업, 스타트업으로까지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평생교육 기업 휴넷에서 분사한 탤런트뱅크가 최근 출시한 ‘원포인T’가 대표적이다. 원포인T는 대기업 대리·과장급 전화 인터뷰 시세(시간당 200만원선)보다 크게 낮은 시간당 33만원에 화상 서비스를 제공한다.
회사 관계자는 “컨설팅 회사 등을 통해 고비용을 받던 ENS의 문턱이 중소기업을 넘어 스타트업과 예비 창업자에게까지 낮아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4월 직장인 커리어 플랫폼을 운영하는 리멤버가 인수한 이안손앤컴퍼니도 국내 대표 ENS 업체로 꼽힌다. GLG 한국지사 초창기 멤버였던 손영호 대표가 2015년 설립한 이안손앤컴퍼니는 국내·외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해 기업 요구에 대응하고 있다.
리멤버 관계자는 “이안손앤컴퍼니는 고객 기업의 의뢰가 들어왔을 때 자체 보유하고 있는 전문가뿐 아니라 리멤버 회원 400만명을 활용할 수 있어 매칭 능력에서 시너지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음지에서 대형 컨설팅 회사를 중심으로 이뤄지던 ENS 시장이 이제 대중화되기 시작했다고 봐야 한다”며 “국내 산업 환경 변화에 맞춰 다양한 특화 서비스들이 나타날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