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이 2조원을 투입해 대우조선해양 경영권을 인수하기로 결정하면서 자금 부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그룹의 캐시카우(수익창출원)인 석유화학이 경기 침체로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하는 가운데, 에너지와 방산, 우주항공 등 신사업에는 막대한 자금 투입이 예정돼 있다. 다른 기업들은 금리 인상기를 대비해 유동성 확보에 분주한 것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한화그룹은 대우조선해양 지분 49.3%를 확보하기 위한 2조원 규모의 유상증자에 참여할 계획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012450)(1조원), 한화시스템(272210)(5000억원), 한화임팩트파트너스(4000억원), 한화에너지 자회사 3곳(1000억원) 등 6개 계열사가 투자금을 낸다. 한화그룹은 올해 11월 말쯤 본계약을 체결하고 내년 초 매수대금을 납입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대금의 절반을 부담하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자금 마련에 무리가 없다는 입장이다. 한화 관계자는 “올해 말까지 폴란드 K9 자주포 수출 사업을 포함해 기존 및 신규 수주 프로젝트에서 현금이 유입될 예정이고, 한화정밀기계 매각 등 사업구조 재편 과정에서도 추가 자금 확보가 가능하다”며 “기존 사업 운영 자금 등을 고려해도 내년 초까지 1조원 규모의 대금 마련은 충분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시장에서는 한화그룹이 대우조선 인수 대금을 마련하기 위해 일정 금액의 차입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김미희 한국기업평가 수석연구원은 “전체 조달 구조를 파악하기 위해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개별 기업들과 소통하고 있는 단계이지만, 워낙 (인수 대금) 규모가 크다보니 조달이 수반될 거라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2조원을 들여 인수를 한 뒤에도 추가 자금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한화에 앞서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추진했던 현대중공업그룹은 1조5000억원을 먼저 투입한 뒤 필요하면 1조원을 더 투입할 계획이었다. 상반기 말 기준 대우조선해양의 부채비율은 676%에 달한다. 지난해 1조7500억원, 올해 상반기 5700억원 등 대규모 영업적자가 지속되고 있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대우조선해양의 경영정상화를 위해 기존 금융지원을 5년간 유지하겠다고 했지만, 결국 경영정상화를 위해선 추가 지원이 필요할 것이란 시각이 우세하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대우조선에 12조원을 투입했지만 결국 정상화시키지 못했다”며 “한화 역시 대우조선에 자금을 지원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화는 에너지, 탄소중립, 방산·우주항공 등 신사업 분야를 포함한 국내외 투자에 향후 2026년까지 5년간 최소 37조6000억원의 투자를 예고한 상태다. 한화솔루션(009830)은 최근 첨단소재 사업을 물적분할한 후 신설법인의 지분 일부(49% 이내)를 매각해 수천억원을 조달할 계획이라고 밝혔는데, 이는 미국 태양광 설비 구축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한화솔루션 측은 현금 확보와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이같은 조달 방식을 택했다는 입장이지만, 시장에서는 현금 여력이 충분치 않아 지분 매각까지 나서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한화솔루션의 주력 사업이자 그룹 내 캐시카우로 꼽히는 석유화학 부문은 경기 침체로 인한 수요 악화 영향으로 2분기 영업이익이 2280억원에 그쳤다. 이는 전년 동기(2930억원) 대비 22% 감소한 수준이다. 신재생에너지 부문이 일곱 분기 만에 흑자로 전환했지만, 영업이익 규모는 352억원으로 미미한 상황이다.
예고된 투자 자금을 적시에 조달하기 위해서는 차입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경우 신용등급 하락 등 재무 건전성이 흔들릴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금리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기업들은 유동성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며 “대우조선해양 인수로 여러 시너지 효과가 기대되지만 그 효과가 나타나기 전까지 재무 부담을 잘 이겨내야 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