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와 미·중 갈등 지속으로 글로벌 경영 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지자 삼성이 글로벌 대관 업무를 강화하고 있다.

29일 미국 정치자금 조사단체 ‘오픈시크릿츠(Open Secrets)’에 따르면 삼성전자(005930)의 올해 상반기 미국 로비 금액은 251만달러(약 33억3900만원)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동기(177만달러) 대비 41.8% 증가한 금액이며, 역대 최고 수준이었던 2018년 상반기(223만달러)보다도 12.6% 많다. 미국에서 로비는 헌법에 보장된 권리다. 삼성이 고용한 로비스트 인원은 30명이었다. 삼성은 현지 로비 전문 기업과 계약을 맺고 로비스트를 고용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대미 로비 금액은 2017년 트럼프 정권의 보호무역주의와 미·중 갈등 심화로 증가했다. 트럼프 정부 4년(2017~2020년) 간 로비 금액은 1421만달러(약 189억원)로 오바마 정권 8년(2009~2016년) 동안 사용된 764만달러(약 101억원)의 2배 가까이 된다. 바이든 정부가 들어선 지난해에는 372만달러로 다소 줄었으나, 올해 들어 증가세로 돌아섰다.

이는 미·중 갈등과 글로벌 공급망 불안 등이 겹치면서 글로벌 대관 업무의 중요성이 커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삼성전자는 상반기에 ‘반도체 산업 육성법’ 통과를 위해 백악관과 상·하원을 대상으로 로비를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9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서명한 이 법안은 미국의 반도체 산업 발전과 기술적 우위 유지를 위해 모두 2800억달러(약 366조원)를 투자하는 것이 골자다. 법안에는 중국 투자 금지 조항이 담겨있어 중국 정부는 법안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 막대한 로비를 벌였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9일 백악관에서 반도체 육성법에 서명하고 있다./EPA연합뉴스

삼성전자는 내부 대관팀도 강화하고 있다. 지난 3월 미국의 마크 리퍼트 전 주한대사를 북미법인 대외협력팀장 겸 부사장으로 영입한데 이어 지난달에는 권혁우 전 산업통상자원부 미주통상과장을 반도체(DS) 부문 대관 상무로 영입했다. 권 상무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해외대응팀장, 산업부 미주통상과장, 세계무역기구(WTO) 세이프가드위원회 의장 등을 지낸 통상 전문가로 통한다. 삼성전자는 영국 런던과 오스트리아 빈에서도 대관 업무 담당자를 채용하고 있다.

하반기에도 삼성전자의 대미 로비는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는 텍사스주에 170억달러를 들여 제2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다. 지난달에는 향후 20년간 미국 내 반도체 공장 건립을 위해 약 2000억달러를 투자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반도체 동맹인 칩4(Chip4) 강조하면 한국을 비롯해 대만과 일본에 동맹 가입을 압박하고 있다. 일본, 대만은 이미 가입을 공식화했으나 우리나라는 관련 회의도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로비 비용은 대부분 로비스트 고용에 쓰인다”며 “로비 비용이 증가하는 것은 그만큼 경영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