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력원자력이 3조원 규모의 이집트 엘다바 원전 건설 프로젝트를 수주하면서 지난 5년간 일감 절벽에 내몰렸던 국내 원자력 생태계에 다소 숨통이 트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정부는 100여개 기업들이 납품 기회를 가져갈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이번 수주는 원자로 등 주 기기가 아닌 보조 기자재 공급과 터빈 건물 시공 등에 그치는 만큼, 지난 5년간 탈원전 정책으로 무너진 원전 생태계를 복원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5일 산업통상자원부는 한수원이 3조원 규모의 엘다바 원전 기자재·터빈 시공 분야 계약을 체결함에 따라 원전산업 생태계 활성화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일준 산업부 차관은 “내년 8월 공사 시작을 앞두고 우리 기업들도 충분히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신한울 3·4호기 건설 이전에 국내 업체들에 일감을 제공해 원전 생태계를 복원하는 데 이 사업이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집트 엘다바 원전 건설 프로젝트 개요. /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원전은 원전의 핵심 설비인 원자로 등 1차측과 원자로에서 나오는 증기로 전기를 만드는 터빈, 발전기 등 2차측으로 나뉜다. 산업부와 한수원에 따르면 이번 수주는 2차측 중에서도 1차측과 연계된 터빈과 발전기를 제외한 나머지 2차측 설비를 공급하고, 터빈 건물을 시공하는 것이다. 박 차관은 “특정 기업에 수의 계약 형태로 (일감을) 주기보다는 입찰을 통해 경쟁을 해야 하고, 현지 업체들도 입찰에 참여할 것”이라면서도 “경쟁이 있다 해도 100여개의 두산에너빌리티(옛 두산중공업) 협력 기업들이 이번 사업에 납품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번 엘다바 원전 건설 프로젝트를 수주함에 따라 국내 원전 생태계에도 일정 수준의 경제적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부품 생태계는 업체가 많고 기술 수준이 높은 1차측이 중요하긴 하지만, 2차측과 원전 건설 분야도 일감이 없어 고사하고 있는 상황이라 3조원 규모의 수주에 성공한 건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원전업계 관계자는 “계약 금액은 3조원이지만 그 경제적 효과는 더욱 클 것”이라며 “원전 설비만 수출한다고 끝이 아니라 이에 따른 정비, 교체 등에 따른 일감도 계속 발생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산업부는 이번 프로젝트의 경제적 효과를 따로 계량화하진 않았다.

국내 원전 생태계는 지난 5년간의 탈원전 정책으로 황폐화된 상황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원자력산업실태조사에 따르면, 원자력산업분야 총매출액은 2016년 27조4510억원에서 2020년 22조2440억원으로 5조원 넘게 줄어들었다. 원자력산업체 인력 역시 같은 기간 2만2355명에서 1만9019명으로 감소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최근 주요 70개 원자력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들 기업은 국내 원자력 산업의 경쟁력이 탈원전 정책 이전 대비 65% 수준으로 떨어졌으며, 생태계 복구까지 약 3.9년이 소요될 것이라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22일 경남 창원 성산구 두산에너빌리티 원자력 공장을 방문해 한국형 원자로 APR1400 축소 모형을 살펴보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3조원 규모의 수주만으론 원전 생태계에 미치는 효과가 미미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엘다바 원전 건설 프로젝트의 총 사업비는 300억달러(약 40조원) 규모로, 이번에 한국이 수주한 규모는 전체의 10분의 1도 되지 않는다.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는 “40조원 공사에서 3조원 공사를 따낸 것은 그야말로 단순 하청업자 수준”이라며 “이미 무너진 생태계를 회복하기엔 턱없이 부족해 반갑다고 표현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원전업계 관계자 역시 “원자로 수주를 따낸 것이 아닌 만큼 국내 원전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 역시 이번 수주의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데에 대해선 일부분 동의하고 있다. 박 차관은 “원자로까진 아니어도 주기기 보조기기까지 설계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를 모두 우리가 했다면 그 규모가 굉장히 컸을텐데, 이번엔 우리가 발전 측면만 참여를 하는 데다 주 계약자인 러시아와 또다시 계약을 맺고 들어가는 거라 UAE 바라카 원전 등에 비해서는 사업 효과가 적은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수주 규모가 작아진 것은 결국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영향이 크다는 지적도 나왔다. 대규모 프로젝트를 따내기 위해선 정부 차원의 지원을 통해 대규모 자금 조달이 필요하다. 이 교수는 “한국이 지닌 기술력은 최고 수준인데, 활용을 못하고 있으니 3조원으로 만족해야 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며 “러시아한테 뺏기고 3조원으로 좋아해야 하는 이 상황을 만들어 놓은 탈원전 정책이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원전 생태계의 완전한 복원을 위해서는 향후 추가 수주에 더욱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정 교수는 “200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원전 르네상스’가 올 것이라며 세계 각국 원전 기업들이 인력 채용과 투자에 나섰는데, 후쿠시마 원전 사고 등이 터지면서 신규 원전 시장이 말라버렸다”며 “10년이 지난 지금 원전의 안전성과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미뤄졌던 원전 르네상스가 도래할 것으로 보이고, 지금까지 버텨온 한국 원자력 산업이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