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005930) 부회장이 경영 일선에 복귀하면서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에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이 부회장은 광복절 특사로 복권된 이후 당분간 현장 행보를 자제할 것이라는 전망을 깨고 지난 19일 경기 용인 기흥캠퍼스 R&D단지 기공식에 참석했다. 복권된 지 나흘만의 현장 행보다.
이 부회장이 예상보다 빠르게 경영에 복귀하면서 컨트롤타워 신설과 그룹 지배구조 개편 등 삼성그룹 앞에 놓인 난제들을 빠르게 풀어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22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은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해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의 용역 결과를 상반기 중 받아 세부 검토를 이어가고 있다. 삼성은 용역 결과를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이사회 중심 경영으로 전환하면서 경쟁력은 유지할 수 있도록 외부로부터 경영권을 방어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쪽으로 의견이 모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은 지난 3월 글로벌 컨설팅업체 머로우소달리 오 다니엘 이사를 IR팀 부사장으로 영입하고 지배구조 개편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오 부사장은 20년간 지배구조 개편과 경영권 방어 업무를 담당한 전문가다.
재계에서는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안을 두고 삼성물산(028260)을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방안이 가장 유력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배구조 개편을 놓고 삼성이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다. 현재 삼성그룹의 지배구조는 이 부회장 등 삼성 오너일가→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기타 계열사'로 이어진다. 이 부회장 등 오너일가가 삼성물산 지분 31.31%(이 부회장 지분 17.97%)를 가지고 이를 통해 삼성생명(032830)과 삼성전자를 간접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그룹 주력사인 삼성전자 지분을 1.63%만 보유하고 있다. 이 부회장을 포함해 오너 일가, 계열사, 재단 등이 보유한 주식을 모두 합쳐도 지분율은 21.14%에 그친다. 삼성전자 최대주주는 삼성생명으로 8.51%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밖에 삼성물산 5.01%, 오너 일가 5.45% 수준이다. 이런 약한 연결 고리를 강화하는 것이 삼성 지배구조 개편의 핵심이다.
삼성물산이 삼성생명으로부터 삼성전자 지분을 넘겨받은 뒤 지주회사로 전환할 경우 삼성전자 지분율을 13.52%까지 끌어올려 안정적인 최대주주 자리를 확보할 수 있다. 지배구조도 오너일가→삼성물산→삼성전자·삼성생명→기타 계열사로 단순해진다. 문제는 삼성물산이 삼성전자 지분 8.51%를 매입하려면 최소 수십조원의 자금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삼성전자의 시가 총액은 약 358조원으로, 지분 8.51%는 약 30조원에 달한다. IB업계에서는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생명 지분(19.34%)을 통해 다양한 방식의 지분 교환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일각에선 삼성생명 등 금융 계열사만 떼어내 중간 금융지주사를 설립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그러나 중간금융지주사 제도 도입을 위한 법 개정 작업이 사실상 중단된 상태라 삼성에서도 현재로선 검토하지 않는 방안으로 알려졌다.
삼성이 한때 롤모델로 삼았던 스웨덴 발렌베리 가문의 경영 방식도 현재로선 불가능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창업자 발렌베리 가문은 스웨덴 최대 기업집단인 발렌베리그룹을 160여년간 5대째 경영하고 있는데, 3개의 비영리재단을 통해 그룹을 지배하는 것이 특징이다. 고(故) 이건희 선대 회장이 2003년 발렌베리재단을 직접 방문했고, 발렌베리 가문도 두 차례 한국을 방문해 이 부회장과 면담하기도 했다.
국내에선 비영리재단을 통한 기업 경영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현행법상 비영리재단이 기업 주식을 보유할 경우 의결권 있는 발행주식 또는 출자총액에 5% 미만으로 보유할 수 있으며, 이를 초과할 경우 초과분의 최대 60%까지 증여세가 부과된다. 막대한 증여세를 부담하면서까지 재단을 통한 삼성그룹 지배를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재계에서는 삼성물산 지주화가 아닌 완전히 다른 틀에서 지배구조 개편이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도 많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물산의 지주사 전환이 가장 유력하다는 전망이 있지만, 내부에선 이 역시 쉽지 않다는 의견도 많은 것으로 안다"며 "계열사 별로 방안을 마련하려고 여러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삼성그룹 안팎에서는 지배구조 개편의 한 축으로 컨트롤타워 신설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 부회장이 4세 경영 승계를 하지 않겠다고 공식 선언한 만큼 이사회와 전문 경영인 중심의 경영 체제를 구축하려면 그룹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재 계열사별 사업지원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고 있지만, 의사 결정권이나 실행 권한을 가진 조직이 아니라 한계가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삼성은 2017년에 그룹 컨트롤타워였던 미래전략실(미전실)을 폐지했다. 이후 삼성전자, 삼성생명, 삼성물산 등이 사업 지원 관련 태스크포스(TF)를 각각 운영 중이다.
앞서 삼성은 그룹 컨트롤타워 신설 방안을 검토했으나 잠정 보류했다. 재계에선 삼성이 국정농단 사태로 해체한 미전실을 부활시킨다는 비판을 의식해 컨트롤타워 신설을 미루고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그러나 이 부회장이 경영에 복귀했고, 그룹의 대규모 M&A(인수합병)나 경제 불확실성 등에 전사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선 컨트롤타워 신설을 미뤄선 안된다는 의견이 경영계에서 나온다. 또다른 재계 관계자는 "국내 재벌기업 체제에 맞게 SK(034730)그룹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수펙스협의회도 참고할만 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