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MM(011200)은 최근 현대미포조선과 1800TEU급(1TEU=20피트 컨테이너) 컨테이너선 3척을 건조하는 계약을 맺으면서 전체 계약금 1395억원 가운데 50%를 선수금으로 지불했다. 전체 금액의 60% 이상을 선박을 인도받을 때 내는 ‘헤비 테일(Heavy-tail)’ 방식이 일반적인 상황에서 선수금으로 50%를 지급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현재 피더(Feeder·3000TEU 이하 중소형) 컨테이너선 1척당 건조 계약이 500억원에 육박한다”며 “HMM은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선박을 발주하고 현대미포조선은 계약금의 50%를 미리 받아 현금 유동성을 확보하는 ‘윈-윈(Win-Win)’을 선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 세계적으로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면서 조선업계의 ‘수주 랠리’도 한풀 꺾일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조선사가 그동안 일감을 많이 확보했지만, 금액의 대부분을 인도 때 받는 경우가 많아 일감을 많이 확보한 지금 계약금 지급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건조를 마친 선박을 진수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제공

1일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우리나라 조선사들은 올해 상반기에 총 994만CGT(총화물톤수) 규모의 선박을 수주했다. 지난해 상반기보다 10.1% 적었다. 같은 기간 건조 계약금 규모는 6% 감소한 264억5000만달러였다. 수은 해외경제연구소는 하반기 수주 규모는 상반기보다 더 감소한 506만CGT·135억5000만달러로 전망했다. 연간 총 1500만CGT·400억달러 수준으로 지난해보다 수주량은 14.9%, 건조 계약금은 9.7%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코로나 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해운사들은 운임 상승에 힘입어 벌어들인 돈을 선박에 투자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010140), 대우조선해양 등 주요 조선소는 3년 치 일감을 확보했고, 선박 가격을 더 올려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전 세계적인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면서 해운사들의 발주도 숨 고르기에 들어가고 있다. 수은 해외 경제연구소는 올해 전 세계 발주량이 지난해보다 31.7% 적은 3500만CGT, 건조 계약금 규모는 20.2% 줄어든 915억달러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조선사들은 당장 보릿고개를 넘어야 한다. 헤비 테일 방식의 계약이 많아 2년 뒤 선박을 인도할 때 자금 대부분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박 건조비용의 80%를 인수한 뒤에 치르는 경우도 있다. 양종서 수은 해외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및 해운시장 불황과 함께 해운사들이 자금을 확보하기 어려워지면서 건조대금을 최대한 늦게 내는 헤비 테일 방식이 굳어졌다”고 말했다.

2019년부터 2020년 상반기까지 수주가 급감했던 만큼 올해 하반기에 조선사가 받을 수 있는 인수대금은 많지 않다. 올해 상반기 선박 인도량은 405만CGT로 지난해 상반기보다 36.1% 줄었다. 조선사가 수주한 선박 건조자금의 대부분을 대출에 의존해야 한다는 의미다. 금리가 오르는 상황에서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박두선 대우조선해양 사장도 지난달 비상경영을 선언하면서 “건조자금은 크게 증가하는 데 비해 인도대금은 감소해 유동성 부족이 현실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계약금을 제대로 못 받는 경우도 있다. 국내 조선사들은 러시아 해운사로부터 LNG선 등을 80억5000만달러(약 10조4000억원)가량 수주했었다. 삼성중공업이 50억달러로 규모가 가장 크고, 대우조선해양 25억달러, 현대삼호중공업 5억5000만달러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대금 지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계속되고 있다.

조선업계에선 관행으로 굳어진 헤비 테일 구조의 계약방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조선사 관계자는 “아파트 분양을 받으면 계약금, 중도금, 잔금을 나눠서 내는 것처럼 선박도 공정 단계별로 돈을 나눠 받아야 조선사가 금융비용을 아껴서 선박 가격을 할인해줄 여지가 생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저가 수주를 안 한다’는 수준을 넘어서 대금을 잘 회수할 수 있도록 내실을 다질 때”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