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과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T·Digital Transformation) 가속화로 ‘N잡러(여러 직업을 가진 사람)’가 늘고 있다. 이들은 본업 외 부업(副業)을 통한 추가 소득 창출이나 자기 개발, 자아실현을 추구한다. 다양한 디지털 플랫폼을 활용하는 것도 특징이다. 평생직장이란 개념에도 매달리지 않는다. 자신이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자유롭게 일하길 원한다. ‘이코노미조선’은 N잡러를 집중 조명했다. [편집자 주]

/이코노미조선

회사원 김모(39)씨는 1년 전부터 퇴근 후 집 근처에서 매일 3시간씩 배달 일을 부업으로 뛰고 있다. 김씨가 부업을 시작한 건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확산 이후 시작된 재택근무로 답답함을 느껴서였다. 배달 일에 대한 애환과 노하우를 콘텐츠로 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면서 추가 수입도 생겼다. 김씨는 “제2의 월급이 차곡차곡 쌓여가는 걸 보면서 경제적 자유가 앞당겨질 것이란 기대감도 커졌다”라고 말했다.

40대 직장인 윤모씨의 어릴 적 꿈은 시인이었다. 윤씨는 생업을 위해 꿈을 접고 평범한 회사원의 길을 걷던 중 신춘문예로 등단해 정식 시인이 됐다. 회사 퇴근 후 틈틈이 시를 썼고, 두 차례 시집도 출간했다. 팬데믹으로 업무적인 술자리 약속이 줄면서 퇴근 후 세 번째 시집을 준비할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 윤씨는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자아실현을 위해 시인에 도전한 것”이라며 “두 가지 일을 병행하는 게 힘든 일이긴 하지만, 자기 개발도 되고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라고 했다.

직장 월급 외 소득 창출이나 자기 개발, 자아실현을 위해 퇴근 후나 주말에 부업을 뛰는 N잡러(여러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늘고 있다. 과거에도 본업 외 부업을 통해 수입을 얻는 ‘투잡족’이라는 말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부업의 수가 두 가지를 넘는 의미를 내포한 ‘N잡러’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5월 기준, 부업을 하고 있는 인구수는 62만9610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팬데믹 발생 직전인 2020년 1월(38만1314명)과 비교하면 약 65% 증가했다.

급격한 부업 인구 증가의 배경으로는 팬데믹이 꼽힌다. 재택근무로 출퇴근 시간이 줄어든 회사원들이 부업을 통한 추가 소득 창출에 관심을 가지게 됐기 때문이다. 영국 조사전문기관인 센서스와이드가 재택근무자 1035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 68%는 “코로나19 발생 이후, 부업을 더욱 많이 하고 있다”고 답했다. 부업을 하는 이유로는 ‘재택근무로 유연성이 생겨서(51%)’가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코로나19로 인해 경영상 어려움을 겪은 회사들이 정규직 직원들의 정리해고에 나선 것도 부업 인구 증가에 영향을 줬다. 평생직장에 대한 믿음이 흔들린 회사원들 사이에서 제2의 직업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했기 때문이다. 특히 국내의 경우에는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으로 인해 근로 시간이 줄면서 연장 근로에 따른 수입이 감소한 영향도 부업 인구 증가의 원인이 됐다.

N잡러 증가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T·Digital Transformation) 가속화와도 맞물려있다. 프리랜서 중개 서비스부터 1인 기업의 판매 채널이 된 알리바바 같은 전자상거래, 유튜브·인스타그램으로 대표되는 소셜미디어, 에어비앤비 같은 자산공유, 배달의민족과 우버 등 운송 기반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다양한 디지털 플랫폼이 여러 유형의 부업을 손쉽게 할 수 있도록 한다.

고동록 HR애널리틱스연구원 원장은 “DT 시대 도래로 평생직장 개념이 흔들리고 근로자들에게 N잡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디지털 플랫폼의 부상이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자유롭게 일하는 새로운 형태의 노동 개념을 확산시킨 것이다. 긱 워커(gig worker·조직과 정해진 출퇴근 시간 없이 수입을 올리는 근로자) 시대의 도래다. 정규직 일을 하면서 부업을 하기도 하지만 비정규직 일을 필요할 때마다 동시에 여러 건 하는 1인 전문가 기업도 있다.

개인사업자부터 포천 글로벌 500대 기업까지 전 세계 420만여 고객사에 160개국의 프리랜서들을 중개해주는 이스라엘 파이버(Fiverr)의 2021년 매출은 2억9766만달러(약 3929억원)로 팬데믹 직전인 2019년 대비 약 178% 늘었다. 국내에서도 크몽이나 숨고 같은 인력 중개 온라인 플랫폼이 인기를 끌고 있다. 크몽의 올해 2분기 플랫폼 고객 수(개인·기업)는 215만 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36% 증가했다.

특히 젊은 세대들은 정년 보장의 철밥통보다 일의 유연성이 높은 긱 워커를 선호한다. 보스턴컨설팅그룹이 최근 한국, 미국 등 12개국 근로자 및 긱 워커 1만1363명에게 향후 긱 워커로 일할 의향이 있는지 물은 결과, 70%가 ‘그렇다’고 답했다. 긱 이코노미(gig economy·임시직 근로 형태를 기반으로 한 디지털 플랫폼 경제)를 기반으로 한 N잡이 일자리의 미래 유형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2023년 미국 긱 이코노미 규모는 4552억달러(약 600조8600억원)로 팬데믹 직전인 2019년 대비 83% 성장할 것으로 예측됐다.

N잡 확산은 저출산이나 고령화로 인한 경제 활동 인구 부족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 꼽히기도 한다. 종신고용의 대명사였던 일본에서 정부가 2018년부터 근로자의 부업을 장려하기 시작한 게 대표적이다. 일본 정부는 2019년 취업 규칙 가이드라인에 ‘허가 없이 다른 회사 등의 업무에 종사하지 않는다’라는 근로자 부업·겸업 금지 항목을 삭제했다. 그 결과 일본에선 부업 경험을 내부 승진 조건으로 내건 대기업(미쓰이스미토모해상화재보험)까지 등장했다. 직원의 부업 활동이 회사 업무에 아이디어와 활력을 불어넣는 등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방향으로 인식 전환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세키구치 토모키 교토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부업 허용을 통해) 기업의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기업은 능력 있는 근로자를 부담 없이 고용해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고 했다.

한국도 일본처럼 2000년 고령화 사회로 들어섰지만, 부업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과거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직원들이 부업을 하면 본업 근무에 소홀할 수 있다며 근로자의 부업 활동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기업들이 적지 않다. ‘이코노미조선’이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진 ‘N잡 시대’를 기획한 이유다.


+Plus Point

이찬 서울대 산업인력 개발학 교수. 미국 오하이오주립대인적자원개발 석·박사, 현 서울대 평생교육원장 / 이찬

Interview 이찬 서울대 산업인력개발학 교수

“N잡러는 자율성 갖춘 ‘디지털 노마드’”

“N잡러는 자율성을 갖춘 ‘디지털 노마드(Digital Nomad)’다.” 이찬 서울대 산업인력개발학 교수는 7월 12일 ‘이코노미조선’과 서면 인터뷰에서 N잡러의 특징을 이같이 설명했다. 이 교수는 인적자원(HR) 및 직무 분석 전문가로 2021년 한국산업교육학회장으로 취임했다. 현재 서울대 평생교육원장도 맡고 있다. 이 교수는 또 N잡러 성공 원칙으로 기술 변화 등 시대 상황을 고려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부업을 택해 ‘스킬업’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N잡러 증가 배경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경제 위기,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시대 도래에서 찾을 수 있다. 2021년 국제노동기구(ILO) 발표에 따르면 팬데믹 기간 세계적으로 255만 명의 정규직 일자리가 사라졌다. 유럽연합(EU) 산하 유로파운드(Eurofound)의 ‘팬데믹 기간 생활과 일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8%(유럽 평균)가 실직했고, 2%는 노동 활동 중단 상태에 처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러한 고용 불안은 근로자가 추가 직업을 갖게 하는 동기로 작용하고 있다. 또 급변하는 현 상황에서 전일제 직업보다 근로자가 원할 때 부업을 추가하는 유연한 업무 형태가 더 안정적인 일자리가 될 수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N잡러의 특징은.

“키워드로 보자. N잡러를 설명하는 첫 번째 키워드는 ‘디지털 노마드’다. 그들은 디지털 장비를 활용해 시공간의 제약 없이 창조적인 활동을 한다. 인터넷과 도구만 있으면 창작자이자 1인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실제로 N잡러는 유튜버나 인플루언서가 되어 자신만의 콘텐츠를 생산하거나, 동영상 또는 오디오를 활용해 제작한 디지털 북을 판매해 수익을 낸다. 두 번째 키워드는 ‘자율성’이다. N잡러를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34%는 부업을 하는 가장 큰 동기로 ‘자율성에 대한 열망’이라고 답했다. 자율성을 기반으로 하는 부업 활동은 N잡러의 업무 역량을 키우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N잡러로 성공하려면.

“첫 번째,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같은 시대적인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미래에는 인간과 인공지능(AI)이 협업하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AI에 대체되기 쉬운 반복적인 업무 수행보다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부업 활동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두 번째, 시장의 수요를 고려해야 한다. 미국 금융 서비스 업체 페이오니아가 발표한 2022년 세계 프리랜서 수입 현황 보고서를 보면, 정보기술(IT), 마케팅 같은 수요가 증가한 분야도 있지만, 고객 서비스, 프로젝트 관리와 같이 수요가 감소한 영역도 확인된다. 수요를 고려해 지속적인 부업 활동의 가치를 높이고 지속성을 확보해야 한다. 세 번째, 본인의 흥미와 동기 수준을 고려해야 한다. 부업 활동은 수입을 높이기 위한 활동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기술과 경험을 통한 주체적인 커리어 형성의 기회이기도 하다. 자신이 좋아하는 부업 활동을 하며 성장하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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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기사>

Part 1. N잡러, 평생 직장 시대 사라진다

① 팬데믹·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가속화하는 ‘N잡’ 시대

② [Infographic] N잡 시대

Part 2. N잡러들

③ [Interview] 프리랜서 플랫폼 ‘벤처 L’ 창업한 N잡러 매튜 모톨라

④ [Interview] 미술가에서 영화감독으로 영역 넓힌 조애리 작가

⑤ [Interview] ‘나는 해외구매대행으로 한 달에 월급을 두 번 받는다’ 저자 고범준 코지룸아이앤씨 대표

Part 3. 전문가 제언

⑥ [Interview] 세키구치 토모키 교토대 경영대학원 교수

⑦ <N잡러 절세 Tip>[Interview] 김현주 라움세무회계 대표 세무사

⑧ <N잡러 법률 쟁점>[Interview] 배태준 위어드바이즈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