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KAIST) 박사 과정에서 자율주행을 연구하던 3명이 “이런 기술을 바다에 적용해보자”며 2015년 씨드로닉스란 회사를 만들었다. 해양·항만 분야는 스타트업의 불모지로 불린다.

이 회사는 장기적으로 ‘완전 자율운항’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는 그 길목에서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선박 운항을 보조하는 ‘AI 어라운드뷰 시스템(NAVISS)’, 대형 선박 접안(배를 육지에 대는 것)을 보조하는 ‘AI 접안 모니터링 시스템’ 두 가지 솔루션을 내놓고 있다. 어라운드뷰 시스템은 배 주인인 해운사에, 접안 모니터링 시스템은 항만 운영사에 각각 판다.

최근 소프트뱅크벤처스는 씨드로닉스에 45억원을 투자하며 “AI 데이터를 통해 최적의 경로로 해상 운송을 한다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고, 해양사고의 75%를 차지하는 사람의 운항 부주의 역시 현저히 줄일 수 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광활한 바다에서 자율운항은 왜 필요한지, 이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어떤 난관을 풀어야 하는지 박별터 씨드로닉스 대표를 만나 들어봤다.

카이스트 대학원 재학 시절 씨드로닉스를 창업한 박별터 대표는 '자율운항' 시장을 블루오션으로 보고 있다. /씨드로닉스

-자율운항에 뛰어든 이유는.

“카이스트 대학원 재학 시절 연구실 테마가 ‘자율주행’이었다. 예를 들어 실내 주행로봇인 로봇 청소기나 자율주행 자동차를 연구했고, 배달 로봇을 개발해보기도 했다. 그 중 하나가 선박이었다. 현장에 가 보니 이런 것까지도 사람이 하나 싶을 정도로 열악했다. 대중의 관심이 많은 자동차에서는 많은 시도가 이뤄지고 있는데, 일상과 거리가 먼 해양에서는 (자율운항 등을) 적용할 생각도 안 하고, 하더라도 그 시도가 너무 어렵기 때문에 기술과 배척돼 있다고 느꼈다. 우리가 관련 기술을 개발해 시장을 바꿔보려고 선박 쪽으로 방향을 틀게 됐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열악한가.

“요즘 자동차는 차선을 잘 따라가는 반자율주행이 가능하다. 선박은 그런 자동화된 시스템이 하나도 없다. 무전으로 경험, 스킬을 교류하고, 서류도 전자문서가 아닌, 종이로 오간다.”

-완전 자율주행은 요원해 보이는데, 배는 어떤가.

“자동차 운행 중 등장할 수 있는 장애물은 사람, 자전거, 킥보드, 트럭, 버스 같은 정형화된 것이다. 차선, 신호등 같은 규칙도 잘 짜여져 있다. 인공지능이 인식하는 데 쉬울 수 있다. 문제는 장애물이 갑자기 등장한다는 것이다. 바다는 사방이 트여 있기 때문에 장애물이 적어도 갑자기 튀어나오진 않지만 정형화돼 있지 않다는 게 어렵다.

선박의 모양은 제각각이다. 컨테이너선이 다 비슷하게 보이지만 그 안에 화물을 있는지 없는지, 어디에 뭐가 달렸는지에 따라 모양이 달라진다. 규칙이 정해져 있지 않아 예측 불가능한 것도 있다. 자동차는 차선을 따라가는 게 일반적인데 배는 어떻게 올지 모른다. 제어에도 어려움이 있다. 자동차는 브레이크를 밟으면 멈추지만, 배는 물 위에 떠 있어서 정확히 멈출 수 없다. 어떤 장애물이 발견되면 엔진을 멈추거나 반대 방향으로 키 핸들을 돌리는 방법밖에 없다. 예측이 굉장히 중요한 이유다.”

-배간 통신은 없나. 이동 경로를 알 수 있으면 예측 가능성이 올라갈 것 같은데.

전 세계 선박의 실시간 위치정보를 취합하기 위해 구축한 선박자동식별시스템(AIS)이 있다. 선박 이동 정보를 주변 선박이 받을 수 있다. 그런데 AIS를 모든 선박이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필수가 아니다. 배의 정보나 목적지가 잘못 기입돼 있을 수도 있다. 이에 대해 제재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정보를 신뢰하기 어렵다.”

선박의 운항을 보조하는 'AI 어라운드뷰 시스템(NAVISS)'을 구현한 모습. /씨드로닉스

-꼭 자율운항이 필요한 것인가.

“먼바다로 가면 배가 서로 마주칠 일이 거의 없다. 이 경우에는 지금도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찍어 놓으면 쭉 간다. 자동차 반자율주행 모드와 비슷하다. 문제는 연안에 왔을 때다. 전 항해사가 달라붙어 전방주시 해야 한다. AIS가 없는 선박부터 어선, 그물, 부표, 사람이 타고 다니는 요트 등 장애물이 많다. 그 사이를 복잡하게 빠져나가야 한다. 항만으로 들어오면 수심도 살펴야 한다. 씨드로닉스는 이런 연안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다.”

-자율운항 기술을 개발하는 회사들이 있나.

“처음 창업했을 때만 해도 경쟁사가 거의 없었다. ‘자율운항’이 뭔지 몰라 0부터 100까지 설명해야 하는 일도 많았다. 대기업 조선소를 찾아다니면서 협력해보자고 제안해봤지만 ‘자율운항 시대는 절대 오지 않을 것’이라는 답만 들었다. 그런데 최근 현대중공업 같은 대기업도 적극적으로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2020년 12월 60억원을 들여 100% 자회사로 선박 자율운항 전문 회사인 ‘아비커스(Avikus)’를 설립했다. 대기업까지 뛰어 드니 자율운항이 꼭 필요한 기술이라는 데에 공감대가 확산했다. 이젠 0이 아닌 80부터 설명하면 된다.”

-대기업이 직접 뛰어드는 것은 스타트업에 위기가 아닌가.

“자율운항 선박을 전담으로 하는 회사가 만들어졌다고 하지만 회사가 1부터 100까지 다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배는 굉장히 크고 시스템이 복잡하다. 조선소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여러 회사의 좋은 시스템을 잘 모아 이를 견고히 통합하는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있다. 실제 국가에서 진행하는 자율운항 선박 연구개발 과제를 아비커스와 함께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