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공급망 실사 의무화 법안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국내 수출기업의 절반 이상이 공급망 내 ESG 경영 미흡으로 원청 기업으로부터 계약·수주 파기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수출기업 300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수출기업의 공급망 ESG실사 대응현황과 과제’ 조사에 따르면, 응답기업의 52.2%가 향후 공급망 내 ESG경영 수준 미흡으로 고객사(원청기업)로부터 계약·수주가 파기될 가능성이 높다고 답했다. 계약·수주 파기 가능성이 다소 낮다는 기업은 40.2%, 매우 낮다는 기업은 7.6%였다. 독일 등은 이미 공급망 실사를 법제화한 상태다.

EU는 올해 초 역내 기업에 ESG 경영을 강제할 수 있는 ‘ESG 공급망 실사’ 지침을 공개한 바 있다. 1~2년 내 도입될 것으로 보이는 이 지침이 시행되면 ESG 내 기업과 그 기업이 거래하는 모든 협력업체는 ESG 경영 준수 여부에 대한 실사를 주기적으로 받아야 한다.

대한상의 제공

국내 수출기업들은 원청기업이 ESG 실사를 시행할 경우 이에 대한 대비도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ESG 실사 대비수준’을 묻는 질문에 ‘낮다’는 응답이 77.2%에 달했다. ‘높다’는 응답은 22.8%에 그쳤다. ‘실사 단계별 대응수준’을 묻는 질문에는 ‘대응체계 없음’이라는 응답이 58.1%로 나와 전혀 준비가 안된 상태가 많았다. 기본적 수준인 ‘사전준비 단계’라는 응답은 27.5%였다.

원청업체가 공급망 내 협력업체를 대상으로 실시하는’ESG 실사, 진단·평가, 컨설팅 경험 유무’에 대해서도 ‘경험이 있다’고 답한 경우는 소수에 그쳤다. ESG실사(8.8%), 진단·평가(11.8%), 컨설팅(7.3%) 등 분야별로 10% 내외에 불과했다.

조영준 대한상의 지속가능경영원장은 “일반적으로 고객사에 해당하는 대기업은 비교적 ESG경영을 잘 수행하며 협력업체들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편이지만 공급망 중간에 위치한 중소·중견기업은 여전히 ESG 준비가 미비한 상태에서 고객사의 ESG 요구에 대응하면서 하위 협력업체까지 관리해야 하는 이중고를 안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기업들이 ESG경영에 투자할 여력이 크지 않다는 점도 문제다. 응답업체들은 ESG실사를 위해 투자할 수 있는 예산 범위로 ‘50만원 미만’(29.9%)을 가장 많이 꼽았다. ESG 컨설팅은’1000만~2000만원 미만’(26.7%), 지속가능보고서 제작은 ‘1000만원 미만’(35.1%)이 가장 많았다.

응답업체들은 ‘공급망 ESG 실사 관련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내부 전문인력 부족’(48.1%)을 꼽았다. 이 외엔 ‘진단 및 컨설팅·교육 비용부담’(22.3%), ‘공급망 ESG실사 정보 부족’(12.3%) 등이 뒤를 이었다. 필요한 정책으로는 ‘업종별 ESG 가이드라인 제공’(35.5%), ‘ESG 실사 소요 비용 지원’(23.9%), ‘협력사 ESG교육 및 컨설팅 비용 지원’(19.3%)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우태희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은 “올해 초 EU의 공급망 실사 기준 초안이 발표되고 내년 1월부터 독일 공급망 실사법이 시행되면서 수출기업들에게 비상이 걸렸다”며 “공급망 관리를 잘하는 기업은 글로벌 비즈니스 생태계에서 경쟁력을 갖게 되는 만큼 상의도 수출기업들을 위해 공급망 ESG 실사, 컨설팅, 전문인력 양성 등을 지속적으로 도울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