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012030)그룹의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회사인 DB하이텍(000990)이 사내 시스템 반도체 설계를 담당해온 브랜드사업부의 분사를 검토하고 있다. 분사가 그룹 지배구조를 강화하기 위한 움직임이라는 해석이 나오면서 DB하이텍 주가는 한때 폭락하기도 했다. DB그룹은 반도체 설계 사업부 분사는 지배구조 문제와는 상관이 없고 위탁생산과 설계를 강화하기 위해 검토했다는 입장이다.

DB하이텍 부천공장 전경 /DB하이텍 제공

앞서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5월 11일 DB Inc.(이하 ‘DB’)에 지주회사로 전환됐다고 통보했다. 지주회사인 DB와 자회사인 DB하이텍(000990), DB월드, DB에프아이에스와 손자회사인 DB메탈, 동부철구 등이 올해 1월부터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 기준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현행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매년 말을 기준으로 자산총액이 5000억원 이상이고 자회사 주식가액의 합계액이 자산총액의 50% 이상(지주비율 50% 요건)인 회사는 지주회사로 전환된다. 2020년말 DB의 자산은 4843억원이었는데, 2021년말에는 6104억원으로 증가했다. 8인치(200㎜) 웨이퍼 기반 반도체 호황으로 DB가 보유한 DB하이텍 지분 12.42%의 가치가 2020년말 2812억원에서 2021년말 4008억으로 늘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DB는 2024년 1월 1일까지 공정거래법이 정한 지주회사의 의무를 부담하거나, 지주회사 지정 조건을 벗어나야 하는 과제가 생겼다. DB가 소유한 DB하이텍 지분을 현재 12.4%에서 30%까지 늘려 의무를 충족하거나, 현재 보유한 DB하이텍 지분을 매각해 관계를 정리해야 한다. DB가 DB하이텍의 지분을 추가로 17.6% 이상 확보하는 것은 재무 여건상 쉽지 않은 상태다. 이 때문에 DB하이텍 매각이나 DB의 차입금 확대를 통한 지주회사 자산규모 확대 가능성이 거론돼 왔다.

DB하이텍이 반도체 설계 사업부 분사를 검토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시장에서는 물적분할이나 인적분할을 통한 지배구조 강화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물적분할로 브랜드사업부가 신설법인이 되고 이를 상장하면, DB하이텍은 신설법인의 지분 100%를 보유하고 이를 상장할 수 있는 선택지를 갖게 된다. 올해 초 ‘쪼개기 상장’한 기업들은 존속법인의 주가가 대부분 하락했는데, DB하이텍 주주들은 DB하이텍이 이런 방식으로 주가를 낮추려 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DB그룹측은 이 같은 시나리오에 대해 과도한 해석이라고 선을 그었다. 공정위의 지주회사 전환 통보 이후 공정거래법 준수를 위해 별도의 대책을 마련 중이지만, 해당 대책과 이번 분사 구상은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DB 관계자는 “브랜드사업부 분사는 위탁생산과 설계라는 사업 영역을 각각 강화하기 위해 이전부터 검토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브랜드사업부가 디스플레이 구동칩(DDI) 중심에서 벗어나 전력반도체 등 새로운 성장 분야로 확장하기 위해서는 언젠가 분사를 해야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위탁생산을 맡은 회사에 설계 사업부가 있으면 고객사들은 설계 유출 불안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설계 사업부 입장에서도 적극적인 확장이 쉽지 않다. 새로 설계를 맡은 반도체가 기존 위탁생산하던 분야라면 의혹의 눈초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파운드리 80%, 설계 20%라는 DB하이텍의 기존 매출 구조도 브랜드 사업부 중심의 판단을 제약하는 요인이었다. DB그룹 관계자는 “파운드리회사가 설계 사업을 계속 함께 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며 “설계 부문 분사로 파운드리, 브랜드 모두 수익성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