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서비스 실패보다 더 큰 고통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포기하고 싶은 생각을 수백번도 더 한 것 같습니다.”
실시간 오디오 방송 플랫폼 ‘스푼’을 운영하는 스푼라디오 최혁재 대표가 최근 페이스북에 이렇게 토로한 것이 업계에 크게 회자됐다. 이미 누적 기준 700억원에 가까운 투자금을 유치한 덩치 있는 스타트업이자 미국의 오디오 플랫폼 ‘클럽하우스’발(發) 광풍에 ‘차기 클럽하우스’로 주목받던 스푼라디오도 위기라는 걸 보여준 것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유동성 위기로 스타트업으로 흘러가던 자금줄이 메마르는 와중에도 몇백억원의 투자금을 유치했다는 스타트업계 소식이 잇따르고 있다. 하지만 투자를 유치하지 못해 벼랑 끝에 있는 스타트업도 많다. 스푼라디오도 투자 유치에 실패해 직원, 사무실을 절반으로 줄이며 허리띠를 졸라맸다. 지난 5일 서울 강남구 선릉역 인근에 있는 스푼라디오 본사를 찾아 최 대표와 만났다.
그는 “스푼라디오는 이미 시리즈A부터 시리즈C 단계까지 투자금을 유치했던 경험이 있었지만, 단 한 번이라도 원하는 시점에 펀딩(투자유치)이 안 될 경우 후폭풍이 얼마나 큰지 작년에 몸소 체험했다”며 “다음 투자가 없다는 가정으로 돈을 버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코로나 기간 폭발적으로 관심 받던 오디오 스트리밍 플랫폼 시장이 흔들리고 있는 분위기다.
“2020년 4월 클럽하우스가 나오고 6개월 사이 유사 서비스가 쏟아졌다. 한국, 미국, 일본만 모니터링해도 50개쯤 됐다. 스타트업도 있었지만, 트위터나 페이스북, 슬랙, 스포티파이 같은 빅테크 회사들도 직접 서비스를 만들었다. 클럽하우스의 기업가치가 4조원까지 올라가는 데 1년이 채 안 걸렸다. 전 세계적으로 광풍이었고, 클럽하우스를 이을 회사가 어딘지에 대한 관심도 컸다. 작년 상반기만 해도 스푼라디오 역시 사용자가 있었고 돈도 버는 스타트업이라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작년 하반기 시리즈D 투자를 유치하려고 했는데 잘 안됐다. 그 사이 경쟁 서비스가 많아지면서 고객 획득 비용이 3배가 올랐다. 1000원을 써서 1명의 사용자를 획득할 수 있었던 게 3000원을 써야되는 것이다. (콘텐츠를 생산하는) 크리에이터 경쟁도 치열했다. 자금이 급속도로 소진되기 시작했다. 작년 말까지 펀딩을 마무리하려던 게 실패하면서 회사 사정이 한순간 악화되기 시작했다.”
―투자 왜 못 받았다고 보나.
“‘오디오 플랫폼이 반짝인기였다’는 인식이 첫 번째 이유다. 두 번째는 투자자들이 만족할 만한 폭발적인 성장을 저희가 작년에 만들지 못했다는 거다. 재작년(2020년)과 작년(2021년) 매출 규모가 비슷비슷했다.”
―어떻게 대응했나.
“비용을 줄이는 여러 결정을 했다. 마케팅 비용을 80% 삭감하고, 그다음에 경영진 연봉을 삭감했다. 내 연봉도 줄였다. 로열티가 있는 직원에게는 임금 동결을 설득했다. 그런데도 현금흐름이 오래 버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최소한의 필요 인력만 남기고 내보내야 했다. 누구를 내보내야 할지 최종 결정을 내가 했다. 그 과정이 너무 고통스러웠다. 회사를 공동창업한 최혁준 부대표(대표의 친동생), 마케팅 이사 등 10년을 함께 일했던 멤버 상당수가 이번에 나갔다. 학연, 지연 다 떠나서 현재의 위기를 헤쳐 나가는 데 필요한 순으로 의사결정했다. 전체 절반 정도의 직원이 나갔고, 사무실도 두개 층을 쓰던 걸 한 층으로 줄였다.”
―이제 돈을 벌어야 했을 텐데.
“회사의 목적은 고객이 원하는 제품, 서비스를 만들어서 수익을 창출하는 거다. 월 100만원 이상 버는 고수익 DJ(라디오 방송 콘텐츠 제공자)를 늘리는 것이 곧 우리가 돈 버는 길이라는 데서 다시 시작했다. 끼 있고 재능 있지만 수익을 잘 내지 못하는 분들을 일일이 만나 어떻게 더 수익을 낼 수 있는지 공유했다. 수익을 많이 내는 DJ가 더 많이 노출되고 트래픽을 모을 수 있는 일련의 활동도 했다. 한 달에 100만원 벌던 DJ가 200만원, 300만원씩 버는 사례가 속속 나오면서 플랫폼 충성도가 훨씬 올라갔다. 월 100만원 이상 버는 DJ 수가 연초 대비 20% 늘었다. DJ가 돈을 많이 벌면 그 수수료를 수익으로 하는 스푼도 돈을 번다. 그 결과 올 상반기 영업이익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이제 오디오 플랫폼의 성장세가 지속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해야 할 시점인 것 같다.
“오디오 시장이 있느냐, 없느냐는 이제 성과로 평가받아야 한다. 지금은 그 과정이기 때문에 속단하기 어렵다고 말하고 싶다. 클럽하우스, 카카오 ‘음’ 등이 나오면서 트래픽이 분산됐었지만, 올해 2분기부터는 조금씩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올 하반기까지는 투자 유치 없이 비즈니스에만 집중해서 매출, 영업이익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기존에 돈을 태우면서 성장하는 방식대로 하지는 않을 것이다.”
―스타트업 후배들에게 조언한다면.
“보통 스타트업이 투자를 받으면 공격적으로는 12개월, 보수적으로 18개월쯤을 염두에 두고 돈을 쓴다. 이 기한이 도래하기 전까지 성과를 만들고, 다음 투자를 더 크게 받는 식으로 경주마처럼 달려간다. 우리도 시리즈A부터 시리즈C까지 이런 과정을 밟았다. 2019년 450억원이라는 큰돈을 유치하고 나서 너무 공격적으로 광고, 홍보, 사람 채용에 돈을 썼다. 단계별로 성과가 나오면 비용, 사람을 투입하는 식이어야 하는데 큰 실수였다. 한 번이라도 회사가 원하는 타이밍에 펀딩이 안 되니 후폭풍이 얼마나 큰지 우리가 작년에 경험하지 않았나. ‘고객 감동’ 같은 미사여구가 아닌, 매출을 만들어야 한다. 다음 투자 유치가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 역설적으로 스타트업이 투자 유치가 필요 없을 때 가장 좋은 조건으로 투자를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