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005930) 부회장의 유럽 출장을 계기로 삼성이 전장(전자장비) 사업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삼성은 전장사업 투자에 소극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나, 삼성SDI(006400)삼성전기(009150), 삼성디스플레이 등 주요 계열사들이 전장사업 제품군을 확대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삼성이 미래 활로를 위해 본격적으로 전장사업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SDI와 삼성전기, 삼성디스플레이 등 삼성의 주요 계열사들은 배터리, 자율주행 칩, 차량용 반도체, 카메라 모듈,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디스플레이 등 전장사업에 필요한 핵심 제품군을 늘리고 있다. 삼성전기는 전날부터 이틀간 부산사업장에서 국내 전장고객사를 대상으로 ‘2022 전장 MLCC 테크데이(2022 Samsung Automotive MLCC Tech-Day)’를 진행하고 있다. MLCC(적층세라믹캐패시터)는 전기를 저장했다가 반도체에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해 원활하게 작동하도록 하는 부품이다.

삼성전기는 지난해 6월 동일 크기 기준 세계 최고 용량의 MLCC를 개발해 전기차 업체에 납품하기 시작했다. 이어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에 들어가는 전장용 MLCC 2종을 개발하기도 했다.

삼성전기는 MLCC를 비롯해 카메라모듈까지 전장 부품시장에서 입지를 확대하고 있다. 자동차에 장착되는 카메라모듈은 도로 신호, 표지판, 장애물 등을 촬영해 전기차의 두뇌 역할을 하는 프로세서로 보내는 핵심 부품이다. 삼성전기는 이달 초 테슬라에 카메라모듈을 납품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8일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SGBAC)에서 유럽 출장을 마치고 귀국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삼성SDI도 배터리 제품군을 다양화하고 있다. 삼성SDI는 천안공장에 4680 배터리 파일럿(시험생산) 라인 증설을 추진하고 있다. 내년 상반기 시제품 생산을 목표로 잡았다. 4680 배터리는 지름 46㎜, 길이 80㎜의 원통형 배터리를 말한다. 삼성SDI가 주로 생산하는 2170(지름 21㎜, 길이 70㎜) 대비 용량은 5배, 출력은 6배 높이고 주행거리는 16% 늘린 것이 특징이다. 4680 배터리는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가 주로 사용한다.

삼성디스플레이는 리지드(Rigid·잘 휘지 않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로 전장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지난해 현대차(005380)의 전기차 ‘아이오닉5′에 전자식 사이드미러용 디스플레이를 공급한 바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9일부터 삼성페이에 삼성패스 서비스를 통합하고 ‘디지털 키(Digital Key)’ 기능을 추가했다. 디지털 키는 사용자가 실물 열쇠를 직접 들고 다니지 않아도 삼성페이를 통해 집과 자동차에 출입할 수 있는 기능이다. 삼성페이 디지털 키를 활용하면 자동차 문 잠금·해제뿐만 아니라 시동까지 가능하다. 현재 디지털 키 서비스는 현대차, 기아(000270), BMW 등의 일부 차량에서 사용 가능하다.

재계에서는 삼성SDI를 중심으로 삼성전기, 삼성디스플레이 등의 전장 부품 계열사를 수직계열화해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패키지기판, 자율주행칩 등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며 향후 전장 시장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삼성의 전장사업은 다른 사업 부문에 비해 투자가 더딘 편이었다. 삼성은 지난 5월 450조원에 이르는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했지만, 배터리나 전장사업 투자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지난해 이 부회장의 가석방 출소 열흘 만에 240조원을 투자 계획을 발표했을 때도 배터리는 빠져있었다. 이에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배터리 등 전장사업을 미래 성장산업으로 보고 있지 않다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삼성전기가 생산 중인 카메라 모듈 모습. /삼성전기 제공

그러나 지난 7일부터 11박12일 간 진행된 이 부회장의 유럽 출장에 최윤호 사장을 비롯한 삼성SDI 경영진이 동행하면서 삼성의 투자 기조가 바뀔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 부회장이 이번 출장에서 헝가리 괴드 배터리 공장을 방문하고 BMW 경영진과 회동도 했다는 점이 이런 해석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 부회장은 유럽 출장에서 돌아온 지난 18일 취재진과 만나 “헝가리의 배터리 공장도 갔었고, BMW 고객도 만났다. 전장기업 하만 카돈도 갔었고, 자동차 업계의 변화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이 부회장의 유럽 출장이 삼성의 투자 계획을 구체화하기 위한 일정이었기 때문에 업계에서는 유럽 전장 기업의 인수합병(M&A)도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