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주식시장이 약세를 보이자 대기업들이 주주가치를 높이겠다며 자사주를 매입하고 있다. 해당 기업 주주들은 매입한 자사주를 소각해야 실질적인 효과가 있다며 자사주 소각을 요구하고 있다.
17일 재계에 따르면 LG(003550)는 2024년 말까지 총 50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취득하기로 했다. LG는 이를 위해 KB증권과 자사주 매입 신탁계약을 체결했다. LG가 직접 자사주를 매입하는 것이 아니라 KB증권이 대신 5000억원어치의 LG 주식을 매입해주는 방식이다. LG의 자사주 매입 발표 이후 주가는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LG는 다만 자사주 취득 후 소각은 검토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 자사주 매입 신탁 계약의 경우 꼭 예정된 물량을 모두 매입하지 않아도 되고, 중간에 계약을 해지할 수도 있다.
시장에선 LG 주가가 최근 오름세를 보인 것을 두고 자사주 매입의 효과보다 배당 정책 변화의 영향으로 보고 있다. LG는 2020년 초 지주회사로서의 특성을 반영해 ‘배당금 수익을 한도로 해서 별도 재무제표 기준 당기순이익(일회성 비경상 이익 제외)의 50% 이상을 주주에게 환원한다’는 배당정책을 발표한 바 있는데 이번에 ‘배당금 수익을 한도로’라는 제한을 없앴다.
또 배당금 수익 외 상표권 사용수익과 임대수익 등 별도 순이익에 대해서도 배당 가능성을 열어놨다. 이는 일시적으로 자회사의 이익 변동이 발생하더라도 배당 재원의 안정성과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LG는 설명했다. 별도 순이익의 50%를 배당한다고 가정할 경우 배당금은 기존 대비 37.5% 증가하는 효과가 발생한다.
배당 정책 변화 없이 자사주 취득만 결정한 기업들은 모두 주가가 하락했다. 동국제강(460860)은 다음달 14일까지 321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취득할 계획이다. 동국제강은 ‘주가 안정 및 주주가치 제고’를 자사주 취득 사유로 설명했다. 동국제강 주가는 자사주 매입 발표 당일인 지난 4월14일 1만7200원이었으나, 이후 횡보를 거듭하다가 현재 1만5000원 안팎으로 떨어졌다. 동국제강은 올해 3월 말 현재 193만280주의 자사주를 보유하고 있다.
DL이앤씨(375500)는 지난 5월 26일부터 오는 11월 25일까지 290억원의 자사주를 매입하기로 했다. 지난해 순이익(연결기준) 5764억원의 5%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DL이앤씨는 “약속한 주주환원 정책을 성실히 이행하기 위한 것”이라고 자사주 매입 이유를 밝혔다. DL이앤씨 역시 자사주 매입 발표에도 주가가 빠졌다.
별도의 자사주 매입 계획을 발표하진 않았지만, SK(034730)도 꾸준히 자사주를 사들이고 있다. SK는 3월 말 현재 자사주 1802만3811주를 보유하고 있다. 이는 전체 주식에서 24.3%를 차지하는 규모다. SK는 최근 국내외 투자사로부터 자사주 소각 압박을 받기도 했다. SK 주가도 연초 25만5500원에서 23만원 안팎으로 떨어졌다.
자사주 매입은 회사가 잉여금 등으로 발행한 주식을 매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회사가 사들인 물량만큼 시중에 유통되는 주식이 줄어 주가 상승의 효과가 있다. 그러나 최근 국내 증시가 약세를 이어가면서 자사주 매입으로 주가 반등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국내 기업들은 일반 주주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가는 자사주 소각에는 소극적이어서 매입한 주식이 다시 시중에 풀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 시장에서 나온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기업이 매입한 자사주가 소각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언제든지 다시 시장에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주가부양 효과에 한계를 보일 수 밖에 없다”며 “미국 등 선진국은 자사주 매입이 곧 소각을 의미하는데, 한국 기업들은 자사주를 쌓아두기만 한다. 국내 기업들도 자사주 소각을 위한 주주들의 적극적인 행동에 직면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