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배터리 업체 CATL이 하이니켈 삼원계(NCM·NCMA) 배터리 출시를 공식화하면서 한국 배터리 기업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CATL은 이미 삼원계 배터리 개발에 성공했으나 화재와 기술력 문제 등으로 정식 출시를 미루고 있었다. 중국 전기차 업체들이 CATL의 삼원계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를 대거 출시할 것으로 전해지면서 그동안 한국 기업이 장악했던 삼원계 배터리 시장을 놓고 양국 기업 간 치열한 경쟁이 예고되고 있다.
17일 배터리 업계와 중국 현지 언론 등에 따르면 CATL의 하이니켈 삼원계 배터리가 탑재된 전기차 모델 10여 종이 출시를 앞두고 있다. 중국 공업신식화부는 최근 친환경 차량 보조금을 지급할 신규 자동차 모델을 발표했는데, 이 중 CATL 삼원계 배터리 탑재 전기차 모델 10여개 포함됐다. 정확한 출시 시점은 명시하지 않았다.
CATL은 그동안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만 생산하며 중국 내수시장에서 성장해왔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가 발표한 올 1~4월 주요 배터리 업체 사용량 점유율을 보면 중국 CATL이 33.7%(41.5GWh)로 1위, 한국 LG에너지솔루션(373220)이 14.9%(18.3GWh)로 2위를 기록했다. 상위 10개 업체의 시장 점유율로 따지면 중국은 55.3%, 한국은 25.9%로 29.4%포인트(P)의 격차를 보였다.
CATL의 LFP 배터리는 주로 자국 내 전기차나 제너럴모터스(GM)·테슬라의 저가형 모델에 탑재된다. LFP 배터리는 니켈·코발트 등 고가의 금속이 함유되지 않아 삼원계 배터리보다 가격이 저렴하지만 에너지 밀도가 떨어진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자사의 고급형 전기차 모델에 대부분 한국의 삼원계 배터리를 채택하고 있다.
CATL은 삼원계 배터리 기술력을 확보했지만, 기술 내재화와 화재 문제 등으로 상용화를 미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CATL이 삼원계 배터리 생산에 다시 뛰어든 것은 미국 시장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를 대형화하고 있는 추세에 맞춰 삼원계 배터리 출시를 서두르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포드는 올해 첫 픽업트럭 전기차 모델로 F-150 라이트닝을 출시했고, GM은 산하 브랜드 GMC를 통해 대형 픽업트럭 전기차 모델인 허머EV 양산을 준비하고 있다. 현대차(005380)그룹도 올해 하반기 아이오닉5보다 큰 ‘아이오닉6′를, 내년에는 대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EV9을 출시할 예정이다. 대형 전기차에는 에너지 효율이 떨어지는 LFP 배터리를 사용할 수 없다. CATL은 북미에 배터리 공장 설립을 추진하고 있는데, 미국의 전기차 대형화 추세에 맞추려면 삼원계 배터리 생산이 필수다. 이에 자국내 전기차에 먼저 삼원계 배터리를 적용하고, 이어 미국 시장 진출까지 노릴 것이라는 전망이 배터리 업계에서 나온다.
일각에서는 CATL의 삼원계 배터리 기술력이 국내 배터리사를 따라잡을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CATL은 그동안 자사의 LFP 배터리에 적용했던 셀투팩(Cell to Pack) 기술을 삼원계 배터리에도 적용할 방침이다. 셀투팩은 모듈을 생략하고 셀을 바로 팩에 조립함으로써 같은 공간에 더 많은 셀을 넣도록 하는 기술로 비용을 낮추고 에너지밀도를 높여준다. 배터리 밀도가 높을수록 전기차 주행거리와 출력이 향상된다. CATL이 삼원계 배터리에 셀투팩 기술을 적용할 경우 한국 기업과의 기술력 격차를 좁힐 수 있을 전망이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CATL의 삼원계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가 출시돼 1년 이상은 운용이 된 후에야 기술력이 어느정도인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아직 국내 기술력을 따라잡지는 못했을 것으로 예상된다”면서도 “중국 배터리 업체들이 정부의 막대한 예산 지원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만큼, 한국도 공급망을 재구축하고 미국 및 신흥시장 공략을 위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