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에너지 정책의 핵심은 에너지 효율과 원가에 기반한 가격 결정이라는 전문가 조언이 나왔다. 이를 위해 정부 유보조항을 적용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하고, 원가변동 요인을 적시 반영할 수 있는 조정요금 상·하한제 변동폭 확대가 필요하다는 내용이다. 원가가 반영되지 않은 전기요금은 에너지 과소비를 불러올 수 있고, 이 상황이 유지될 경우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1000조원에 달하는 재원이 필요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대한전기협회는 16일 서울 송파구 대한전기협회에서 ‘원가주의 기반 전기요금체계 확립 필요성’을 주제로 제4차 전력정책포럼을 개최했다고 밝혔다. 이날 토론회에는 조용성 고려대 교수를 좌장으로 정연제 에너지경제연구원 박사의 발제에 이어 유연백 민간발전협회 부회장, 김승완 충남대 교수,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김연화 소비자공익네트워크 회장 등 6명의 전문가들이 참석했다.

16일 서울 시내의 한 건물에 설치된 전기계량기 모습./연합뉴스

먼저 정 연구위원은 에너지 효율과 원가에 기반한 가격결정이 새정부 에너지 정책의 핵심이라고 했다. 정 연구위원에 따르면, 해외 주요국은 연료비 상승에 따른 원가를 반영해 올해 전기요금을 적게는 24%, 많게는 69% 인상했고, 세금 감면, 바우처 지급, 전력회사 재정지원 등 부담완화 정책을 시행했다.

반면 한국은 한전이 발전사로부터 전기를 사올 때 주는 가격인 전력도매가격(SMP)이 사상 최고를 기록했음에도 원가를 반영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올해 약 23조원 적자(증권사 전망치 평균값)를 내 자본잠식에 빠질 우려가 있다고 정 연구위원은 지적했다.

정 연구위원은 “작년 도입한 연료비 연동제가 물가상승 우려로 정상적 운영이 되지 못하고 있다”며 세 가지 제도개선 방안을 제시했다. ▲정부 유보조항을 적용할 수 있는 명시적인 기준 마련 ▲원가변동 요인 적시 반영을 위한 조정요금 상‧하한 변동폭 확대 ▲연동제 미적용시 손실(잉여)분을 추후 총괄원가를 반영한 전기요금 조정 과정에 포함 등이다.

여기에 기후환경요금은 현재 불명확한 정산시기를 1년 주기로 확정하고,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적용 범위를 단계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도 주장했다.

정 연구위원은 “원가주의 기반 요금원칙의 확립을 통해 안정적 전력공급을 위한 필수투자 재원을 확보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에너지 효율 향상을 유도해 탄소중립 달성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에너지 가격 급등에도 원가를 반영하지 못하는 전기요금으로 에너지 과소비가 고착화됐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김 교수는 “원가를 반영하지 못하는 요금제를 유지할 경우 향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약 1000조원에 해당하는 재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 수치는 각 연료원별 연료비, 저장장치 투자비, 발전설비 자본투자비 등을 현재 가치로 환산하여 고려했으며, 계통비용은 제외한 수치다. 김연화 회장은 “국내외에서 일어나는 대형산불, 가뭄과 홍수 등 기후변화 문제가 에너지 과다사용에 따른 현상”이라고 했다.

참석자들은 시장원칙과 원가주의를 강조한 새 정부의 에너지 정책에 발맞춘 전기요금체계 정립 방안을 제시했다. 최 전문위원은 ▲원가 요인의 일정 수준은 전기요금에 자동 반영 ▲연 2회 전기요금 요금조정 주기 정례화 ▲연동제 조정요금 상‧하한 변동폭 폐지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유연백 부회장은 “전기요금이 물가안정 정책의 틀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기준과 절차에 따라 결정해 전력수급 안정은 물론 건강한 전력산업 생태계 조성을 마련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