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아기상어’보다 더 좋은 지식재산권(IP)은 만들 수 없다. ‘넥스트 아기상어’는 외부에서 발굴해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아기상어’를 히트시킨 더핑크퐁컴퍼니(옛 스마트스터디)의 창업자 김민석 대표가 지난 2019년 스마트스터디벤처스라는 자체 기업형 벤처캐피탈(Corporate Venture Capital·CVC)을 설립한 이유다.
이현송 스마트스터디벤처스 대표는 지난 10일 강원도 강릉시 세인트존스호텔에서 열린 ‘스타트업 생태계 컨퍼런스’에서 “핑크퐁컴퍼니의 성장동력은 기존 비즈니스(콘텐츠, 라이선스 사업)를 오프라인·교육 등으로 확장해나가거나 콘텐츠로 키덜트(아이를 뜻하는 kid와 어른을 뜻하는 adult의 합성어), 동남아시아를 공략하는 식의 신규 시장을 발굴하는 것에 있다”면서 “이를 내부 역량으로 해나가는 데는 시간이 소요되고 외부 단순 협업으로 풀어내자니 내부 역량으로 쌓이지 않아 외부 투자에 본격 나서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까지 스마트스터디벤처스는 게임 개발사 ‘마코빌’, 아이 돌봄 플랫폼 ‘째깍악어’, 애니메이션 제작사 ‘레드독컬처하우스’, 영화·드라마 제작사 ‘바운드엔터테인먼트’, 소셜 독서 플랫폼 ‘텍스처’ 등 본업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콘텐츠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현대차(005380)가 CVC를 운영하는 이유도 비슷하다. 신성우 현대차 CVC팀 상무는 “이제 현대차는 구글, 애플, 테슬라 같은 완전히 다른 플레이어와 싸우게 됐다”면서 “투자뿐 아니라 어떻게 스스로 체질을 바꾸고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지 찾는 것이 CVC팀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현대차는 담당 부서 직원뿐 아니라 구매, 제조, 연구소까지 전사적으로 참여하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본격적으로 CVC에 뛰어들고 있다. 본업을 강화하거나 신규 먹거리를 모색하기 위해서는 외부 투자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확산하고 있어서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도 같은 추세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CB인사이트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지난 한 해에만 221개의 CVC가 신규 설립돼 1700억달러(약 219조원)를 투자했다. 전년보다 2.4배 증가한 규모다. 미국뿐 아니라 아시아계 CVC도 이 기간 498억달러(64조원)를 투자해 성장세가 뚜렷했다.
대기업 중에서는 GS(078930)그룹의 공격적인 행보가 눈에 띈다는 평가가 나온다. GS리테일(007070)은 메쉬코리아, 요기요(딜리버리히어로 코리아), 쿠캣, 카카오모빌리티, 로보아르테 등에 직접 투자했다. 지난해 투자한 곳만 13곳, 규모로는 5500억원에 달한다. GS리테일에서 CVC 업무를 맡고 있는 이성화 신사업부문장(상무)은 “투자는 신사업 확장 여지가 있거나 기존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시너지를 낼 수 있는지로 결정한다”고 말했다.
업계는 더 많은 기업들이 벤처투자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벤처투자 데이터분석 기관인 피치북은 올해 전 세계에서 CVC가 1500개 이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국내에서는 40년 만에 공정거래법 전면 개정으로 대기업의 CVC 진출이 올해부터 본격 허용되는 만큼 기업들이 움직임이 빨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부 교수(스타트업얼라이언스 이사장)는 “CVC는 대기업, 중소기업을 변화시킬 큰 혁신 동력이 될 수 있고, 스타트업 입장에서 보면 기업들의 투자가 향후 인수·합병(M&A)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엑시트(exit·투자금 회수) 채널이 다양해지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