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탁구를 시작해 스물일곱살까지 선수 생활을 했던 청각장애인 박광은(37)씨는 2년 전부터 택시 기사로 일하고 있다. 휴식 시간을 포함해 하루 11시간을 일하면서 평균 10명 정도의 승객을 태운다.

박씨의 택시는 밖에서 보면 일반 택시와 같지만, 내부는 조금 다른 모습이다. 승객은 택시 기사에게 목적지를 말하는 대신 오른쪽 앞좌석 머리 받침대에 설치된 태블릿에 목적지를 입력해야 한다. 키보드나 터치펜으로 쓰거나 음성 인식을 사용할 수 있다. 입력된 목적지는 운전석 모니터로 전달되고, 택시는 곧 출발한다.

제조업 회사에서 20년 넘게 근무하다가 회사가 부도가 나 졸지에 실업자가 됐던 이형수(56) 드라이버와 전직 미용사 박지명(46) 드라이버도 모두 청각 장애인이다.

고요한 택시를 운행하고 있는 박광은(왼쪽부터)·이형수·박지명 드라이버./연선옥 기자

동국대 재학생 4명이 지난 2018년 설립한 코액터스 덕분에 5년 전에는 전국에 한 명도 없던 장애인 택시 기사가 지금은 30명이 넘는다. 코액터스는 청각 장애인 드라이버가 승객과 소통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앱)과 택시 호출 플랫폼(고요한M)을 개발하고, 경고음 대신 진동이나 불빛으로 청각 장애 운전자에게 알림을 주는 첨단운전자지원시스템(ADAS)을 마련해 ‘고요한 택시’를 운영하고 있다. 기술 자체는 어렵지 않지만 그동안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워 개발되지 않았던 시스템들이다. 코액터스는 지방자치단체와 대기업의 지원을 통해 수익 사업으로 구현해 냈다.

처음에는 운전 경력이 있는 청각 장애인과 법인 택시회사를 연결하는 서비스로 시작했는데, 2020년 8월부터는 직접 운영하는 운송서비스를 선보였다. 일반 법인 택시회사의 경우 장기간 근무 시간과 사납금 제도 때문에 장애인들이 일하기 어려운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마침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여객법)이 개정되면서 스타트업도 운수사업을 할 수 있게 됐다. 코액터스는 청각 장애인 33명을 포함해 시니어 운전자, 여성 운전자 등 40여명을 직고용하고 있다.

고요한 택시는 르노코리아가 생산하는 스포츠유틸리티차(SUV) ‘QM6′로 운영된다. 차체가 높아 운전자가 넓은 시야를 확보할 수 있고 실내와 트렁크 공간이 넓어 드라이버와 승객의 만족도가 높다. 가솔린 모델보다 배출 가스가 적은 LPG를 연료로 한다는 점에서도 이점이 있다.

코액터스 창업 멤버인 이준호 코액터스 운영관리팀장은 “택시요금은 각 지자체가 결정하기 때문에 일반 택시 회사는 공급 대수를 늘리는 방식으로 수익을 내지만, 코액터스는 요금 체계를 직접 지정해 서비스 질을 높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며 “장애인이나 노인 등 거동이 불편한 이동 약자가 병원이나 공항을 가는 등 특정한 이동 목적이 있을 때 이용할 수 있는 특화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지명 드라이버가 고요한 택시를 운전하는 모습./르노코리아 제공

현재 10개인 고요한 택시 수는 연말까지 100개 정도로 늘어날 전망이다. 청각 장애 택시 드라이버도 100여명 더 채용할 계획이다. 승객 만족도도 높은 편이다. 고요한M의 누적 사용자는 2만5000명 정도인데, 이용 횟수는 평균 2.5회로 재사용 비율이 높다.

박광은 드라이버는 밤에 취객을 태웠다가 영상으로 수화 지원이 되는 콜센터에 도움을 요청한 적이 있다. 목적지에 도착해 취객 손님이 말을 하는데 발음이 정확하지 않아 음성 인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통역사가 전해온 손님의 말은 “안전하게 잘 도착해줘서 고맙다”는 것이었다. 박 드라이버는 “청각 장애인 중에도 10~20년 사고 없이 운전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고요한 모빌리티를 자주 타다 보면 익숙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