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오전 9시40분쯤 검은색 정장에 마스크를 쓴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부회장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서관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해 4월 이 부회장이 첫 공판에 출석했을 때는 대중의 이목이 쏠렸으나, 40여 차례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새로운 쟁점이 나오지 않고 비슷한 공방이 이어지자 이날 법정 일반 방청석에는 10여명만 앉아 있었다.
이 부회장은 삼성 불법 승계와 관련해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및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1년여간 매주 목요일 서울지법 서관 417호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이날은 43차 공판이었다. 이 부회장은 삼성그룹 내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2015년 이뤄진 삼성물산(028260)·제일모직 합병 과정에 위법하게 관여한 혐의를 받고 있다. 2020년 검찰 수사심의위원회가 불기소를 권고했으나 검찰은 기소했다.
이 부회장은 재판 시작 전 피고인석에 앉아 재판 관련 서류를 검토하면서 옆자리의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부회장)과 대화를 주고받았다. 최 전 실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뇌물공여 혐의 등으로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지난 3월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최 전 실장 역시 삼성 불법승계 의혹 피고인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
9시 49분 재판관이 입장하며 공판이 시작됐다. 이 부회장은 재판부가 출석 여부 확인을 위해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잠시 일어나 목례했다. 이날 공판에서 이 부회장의 이름이 등장한 것은 이때뿐이었다.
검찰은 이날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관련 태스크포스(TF)를 담당했던 A 상무를 상대로 심문을 진행했다. 이 부회장은 이날 2시간의 휴정 시간을 제외하고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 10분까지 6시간을 아무 발언 없이 공판만 지켜보다가 법정을 떠났다.
이 부회장은 2017년 3월 특검에 의해 구속된 이후 국정농단 1심 첫 공판부터 선고공판까지 총 54회 재판에 출석했다. 이어 항소심에는 18회, 대법원에서 사건이 파기 환송된 이후 올 1월 실형을 선고받기까지 11회 법정에 나왔다. 불법승계 의혹 공판이 이날로 43회 진행돼 5년 동안 총 126회 법원에 출두했다.
이 부회장은 지난달부터는 3주에 한 번씩 주 2회 공판에 참석하고 있다. 3주에 한 번 금요일마다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 분식회계 의혹에 대한 심리를 받고 있어서다. 하반기부터는 매주 2회 법원에 출석해야 할 상황이다. 검찰이 삼성그룹의 삼성웰스토리 부당지원 의혹과 관련해 지난달 강제수사에 착수하면서 이 부회장의 재판이 늘어날 가능성도 제기된다. 검찰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 삼성그룹 오너 일가가 웰스토리 자금을 동원했다고 보고 있다.
지난 25일 대한상공회의소,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경제 5단체는 석가탄신일을 앞두고 이 부회장 등 20명에 대한 사면을 청와대와 법무부에 건의했다. 이 부회장이 사면·복권을 받으면 취업제한에서 풀려 경영에 복귀할 수 있다. 그러나 하반기에 주 2회 재판이 현실화되면 이 부회장이 온전히 임직원과 경영 활동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주 3일로 줄어든다. 대규모 해외 투자나 대형 인수합병(M&A)을 결정하려면 장기 해외 출장이 필수인데, 주 2회 재판을 받으면 해외 출장도 사실상 불가능해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