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전부터 재미있는 일이 있었어요. 큰 기업이든 작은 기업이든 만나는 대표마다 ‘MZ세대(밀레니엄+Z세대, 1980~2000년대생)와 어떻게 소통하냐’고 묻는 거예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경험·노하우가 있으니 컨설팅을 해보자’가 시작이었죠.”
‘그녀의 자전거가 내 가슴 속으로 들어왔다’ ‘잘 자 내 꿈 꿔’ ‘진심이 짓는다’ ‘사람을 향합니다’처럼 익숙한 광고문구를 만든 것으로 유명한 광고인 박웅현 전 TBWA코리아 최고크리에이티브책임자(Chief Creative Officer)가 최근 TBWA 조직문화연구소의 소장으로 변신했다. 그가 만나는 수많은 기업의 요청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는 경영진과 MZ세대 간 소통 문제가 기업을 경직시키고 있다며 이를 ‘동맥경화’에 비유했다.
지난 25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TBWA 본사에서 만난 박 소장은 “윗사람이 MZ세대를 타자화하는 우(愚)를 범하고 있다”면서 “MZ세대는 (피해야 할) ‘좀비’가 아닌 똑같은 어른인 만큼 신뢰를 전제로 소통해야 한다”고 말했다. 윗사람이 MZ세대를 정의하고 분석하려는 것 자체를 ‘세대 갈등’의 근본 원인으로 꼽기도 했다.
-조직문화연구소를 출범했다.
“2016년 대한상공회의소가 의뢰해 맥킨지에서 한국 기업의 문제를 진단했었다. 그때 꼽은 네 가지가 ‘보고를 위한 보고’ ‘생산성 없는 회의’ ‘불필요한 야근’ ‘양성 평등 부족’이었다. 한국 기업에 역량 있는 사람이 많지만, 최고를 뽑아내지 못하고 있는 게 이런 것 때문이구나 생각하게 됐다. 그렇게 기업문화에 관심을 갖고 있던 차에 2~3년 전부터 재밌는 일이 있었다. 큰 기업, 작은 기업, 다양한 기업들 대표 많이 만났는데 모두 ‘MZ세대와 어떻게 소통하냐’고 묻는 것이다.
3세 경영에 들어간 젊은 회장이 기업 문화 좀 바꾸라고 하고, 어떤 기업은 MZ세대가 50%가 넘는다고 하소연한다. 정보기술(IT) 기업은 젊은 것 같나. 회의하자고 하면 아무도 말을 안 한다. 스타트업(초기기업)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이 고민하고 있는 걸 알게 됐다.”
-광고기획과 조직문화 컨설팅은 다르지 않나.
“과거엔 광고주로부터 종이 2장만 받아서 광고를 만들었다. 요즘은 다르다. 넉 달씩 기업 내부에 깊숙하게 들어가 C(경영자)급 인터뷰도 하고 연구소도 가고 현장에 가서 직원들에게 문제도 듣는다. 그래야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답이 나온다. 광고는 문제 해결이다. 이런 과정과 결론을 광고를 만드는 데 쓰지 않고, 내부 직원과 공유한다면 조직문화 컨설팅이 된다.
조직문화연구소는 기업이 의뢰하면 6~8주에 걸쳐 어떻게 조직문화를 바꾸고 싶은지, 어떤 문제가 있고, 왜 그런 현상이 생겼는지, 조직 규모는 어떻게 되고, 구성원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을 취재한다. 기간이 길어지면 주요 의사 결정자들과 워크숍을 하기도 한다. 이를 통해 해당 기업이 가지고 있는 핵심 역량이 무엇인지, 이를 어떻게 단순화시킬 것인가, 또 이를 어떻게 전파해 직원들을 변화시킬지를 행동강령, 최고경영자(CEO) 메시지 제안 등으로 정리한다.”
-한국 기업 조직문화의 문제는.
“회의실 분위기를 떠올려보자. 통상 ‘김 대리부터 순서대로 얘기해봐’라고 하거나, 윗 사람이 얘기하고 다들 받아 적는다. 상명하달식, 군대 문화가 팽배해있다. 내부에 피가 뭉쳐 동맥경화가 일어나고 있다. 이런 조직문화는 과거 성장기에는 효율성 측면에서 좋았지만, 시대 화두가 ‘창의성’인 상태에서는 ‘연성화’가 필요하다. 인재를 받아 놓고, 이들 역량을 최대치로 뽑아내기 위해서는 조직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어야 한다. 월급 이외에 출근할 이유를 만들어줘야 한다.”
-꼭 문화를 바꿔야 하나. 넷플릭스처럼 최고의 보상을 통해 최고의 인재만 끌어모아도 되지 않나.
“나는 급할 때도, 차분할 때도 있다. 광고 문구를 정말 잘 쓸 때도, 아이디어가 형편 없을 때도 있다. 상태가 흐르는 강물 같은 게 인간이란 존재다. 기업이 돈으로 최고 인재만 뽑을 수도 없을뿐더러 그렇다 한들 직원들간 합이 맞지 않으면 불협화음이 난다. 최선을 다해서 좋은 사람을 뽑되, 그들의 최대치를 어떻게 뽑을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똑같은 역량을 가진 사람이라도 A 조직에선 10점 만점에 9점을 발휘하지만, B 조직에선 대충 월급을 받으며 7점 정도만 한다. A 조직처럼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문화다.”
-‘출근은 비효율적이다’ ‘성과가 내 몫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라는 MZ세대의 불만이 많다.
“‘타자화의 우’다. 윗사람이 MZ세대를 타자화시키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안 된다. ‘MZ세대가 온다’를 마치 ‘좀비가 온다’로 읽으면 안 된다. 뭐가 옳은지, 합리적인지만 보면 된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맞으면 그렇게, 그렇지 않다면 왜 그렇지 않은지 설득하면 된다.
MZ세대도 다 어른이다. MZ세대가 재택근무를 하자고 하면, 윗사람들은 ‘얘네들이 집에서 일 안 한다’는 불신을 가지고 본다. ‘투자해야 되는데, 성과급만 올려달라고 한다’고 세대 자체를 부정해버린다. 사람은 윗사람이 자신을 믿는다고 생각했을 때 일을 더 잘한다.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믿음이 먼저 필요하다.”
-경영진과 MZ세대, 그 어디에도 끼지 못하는 회색 지대 직원들도 많아지고 있다.
“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생각을 하느냐, 그 생각이 좋으냐만 보면 된다. 세대로 나눠 보는 것 자체가 애써 스스로 힘들어지는 것이다. 대학생을 만나 얘기해 보면, 어떤 친구들은 말이 안 통하지만 진짜 훌륭한 친구들도 있다. C레벨 중에도 꼰대가 있고, 어떤 이들은 저런 리더가 있으니 한국이 잘 된다 싶은 사람이 있다. 세대 프레임에서 벗어나는 게 좋다.”
-어떤 기업은 윗사람의 판단, 명령 체계가 중요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산업군에 따라 공장을 돌리는 곳이나 사람의 생명과 관련되거나 은행처럼 큰 돈이 왔다 갔다 하는 곳에는 규율이 필요하다. 모든 곳이 자유로울 순 없다. 다만 시대의 흐름을 봤을 때 조직문화는 부드러워져야 한다. 적어도 회식(사석) 때는 달라져야 한다. 윗사람만 얘기하고, 다른 사람은 하품하지는 말자는 거다.”
-구체적으로 회식 문화가 어때야 하나.
“윗사람이 입을 닫아야 한다. 회식은 명령 내리는 곳이 아니다. 의제 설정 권한을 사원, 대리에게 줘라. 내가 모르는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 얘기를 해도 좋아하면 들어주고, 물어봐 주면 된다. 듣는 것도 능력이다. 위로 올라갈수록 꼭 필요하다. 말한 사람의 얘기는 관심이 없고, 자기가 아는 얘기, 하고 싶은 얘기만 한다. 대한민국 술자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사무환경이 건강한 조직문화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까.
“개별성, 애자일(Agile·민첩한), 개성 있는 의견이 중요해졌다. 시대의 문맥에 맞게 사무환경도 바뀌어야 한다. 예전에는 벌집 구조라야 일사불란하게 일할 수 있었다. 이젠 개인 공간을 줄이고 공유 공간을 넓혀야 한다. TBWA도 그렇게 최근 인테리어를 바꿨다. 혼자 일하는 시간을 줄이고 얘기할 시간을 많이 가지라는 신호다. 칸막이를 낮춘 건 혼자 일하지 말고 소통하고, 기민하게 움직이란 뜻이다. 자율 좌석제를 하는 곳들도 많다. 상당히 효과적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일하는 형식(자리)이 내용을 지배한다. 창가에서 일할 때와 구석에서 일할 때 (성과나 아이디어가)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