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 누적과 전기요금 인상 무산으로 자금줄이 마른 한국전력(015760)이 약 4년 만에 30년 만기 장기 회사채(한전채) 발행에 나섰으나, 목표치를 채우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전채는 시장에서 우량 채권으로 인식되는 데다 금리도 일반 회사채보다 높다. 30년 장기 투자 위험을 감안하더라도 한전채가 흥행에 실패한 것은 그만큼 한전이 시장 신뢰를 잃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7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한전은 지난달 28일 ‘한국전력공사채권1161′을 총 1300억원치 발행했다. 만기는 2052년 3월 28일까지로 2018년 이후 4년여만에 발행된 30년물 한전채다. 표면금리는 연 3.3%로 한전이 올 들어 이날까지 발행한 한전채 중 최고 금리였다. 한전은 당초 30년물 한전채 2000억원어치를 발행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700억원 미달이 발생해 최종 1300억원 발행에 그쳤다.

전북 나주 한국전력공사 본사./ 뉴스1

한전은 운영자금을 대부분 한전채로 조달한다. 전기요금 인상 불발과 적자 누적으로 올해 1분기에만 지난해 1년 동안 발행한 금액(10조4300억원)과 비슷한 9조6700억원의 한전채를 발행했다. 계속되는 한전채 발행에도 운영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자 궁여지책으로 고금리 30년물 한전채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30년물은 5년, 10년물보다 금리는 높지만 장기간 자금을 운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한전채 30년물의 흥행 실패는 한전의 대규모 적자 우려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시장에서는 올해 한전의 적자규모를 약 20조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90달러 초반대를 기록했을 때 산정한 전망치다. 국제유가가 120달러 수준까지 치솟을 경우 적자 규모는 30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한전은 1분기에만 지난해 연간 적자 규모(5조8601억원)에 육박하는 약 5조3000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문재인 정부가 물가안정을 이유로 올해 1분기에 이어 2분기 전기요금을 동결하면서 적자 규모는 더욱 확대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30년물 한전채의 흥행 실패로 한전은 자금조달 비용 상승의 압박을 받게 됐다. 한전은 운영자금 조달을 위해 한전채를 계속 찍어낼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미달이 발생하면 이후 금리가 더 오를 수 있다. 실제 30년물 한전채 흥행 실패 이후 한전은 지난달 30일 3년물, 5년물 금리를 각각 연 3.35%와 3.49%로 올려 발행했다. 단기 한전채 금리가 30년물을 넘어서는 역전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채권은 만기가 길어질수록 이자율과 투자 리스크가 높아지기 때문에 시장에서 상당한 신뢰를 쌓는 기업이 발행에 성공한다”며 “한때 100년물 외화채까지 찍으면서 시장의 신뢰를 받았던 한전이 30년물 한전채 물량을 채우지 못한 것은 그만큼 신뢰를 잃고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