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40%로 올리고 이를 위한 기본계획을 수립하는 내용이 담긴 ‘탄소중립기본법’이 25일부터 시행됐다. 정부 규제에 따라 기업들도 온실가스 배출 감축에 동참해야 하지만, 중소기업들은 “탄소중립의 필요성에는 공감해도 당장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몰라 막막하다”며 정부의 세심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지난 24일 서울 종로구 2050탄소중립위원회 모습./뉴스1

정부에 따르면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 시행령이 전날 국무회의를 통과해 이날부터 시행된다. 2050 탄소중립이라는 국가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정부는 20년, 지방자치단체는 10년 단위로 탄소중립 기본계획을 세워야 한다. 기업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감축하는 목표를 이행해야 하고, 정부는 이를 지원한다.

중소벤처기업부과 중소벤처기업연구원에 따르면 중소기업은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의 15%, 산업부문 배출량의 31%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광업·제조업의 경우, 10인 이상 사업체 가운데 32.6%가 고탄소업종에 포함되고 그 중 97.9%가 중소기업이다.

중소기업들은 탄소배출 감축 계획조차 세우지 못하고 있다. 중소기업의 탄소중립 이행과 관련된 정부의 기초 통계도 부족하다. 대부분의 중소기업은 자신의 탄소 배출량이 어느 정도인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350여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온실가스 배출량을 인지하고 있는 업체는 18.5%에 불과했다. 탄소중립과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대응 계획이 있다고 답한 업체는 100곳 가운데 7곳에 그쳤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탄소중립 정책이 속도감 있게 이뤄지다 보니,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사전 준비를 할 여력이 없이 끌려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회사가 온실가스를 얼마나 배출하고 있는지, 무엇이 문제인지부터 진단이 돼야 감축을 하지 않느냐”며 “문제를 모르니 대책도 세울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포항제철소 파이넥스(FINEX) 공장 직원들이 철광석을 녹여 쇳물을 뽑아내는 출선 작업을 하고 있다. /포스코 제공

온실가스 저감 비용도 문제다. 기업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선 대대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제조업의 경우 탄소중립형 공장을 신설하거나 온실가스 저감장치를 설치해야 한다. 석탄 등 화석 연료 대신 친환경 에너지를 사용해야 하고, 각종 부품과 소재도 친환경 소재로 교체해야 한다. 이 때문에 발전 공기업과 철강·정보통신(IT) 분야 대기업들은 온실가스 저감에 수천억원의 비용을 투자해왔다. 기업데이터연구소 CEO스코어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한국중부발전은 온실가스 저감에 1조3019억원을 들였고, 남동·남부발전은 6000억원을 넘게 들였다. 포스코(POSCO)는 8713억원, SK하이닉스(000660)는 7852억원을 투자했다.

중소기업은 대기업처럼 과감한 투자를 할 여력이 없다. 중기중앙회 조사에서 중소기업의 95.7%가 탄소중립 전환비용이 부담된다고 답했고, 탄소중립 대응계획을 세우지 못하는 이유로 58.7%가 자금난·인력난을 꼽았다. 예상되는 애로사항으로는 제조원가 상승(77.6%)과 시설전환 자금 부족(53.1%)이 가장 높았다. 업계 관계자는 “설비투자는 말할 것도 없고 온실가스 배출 현황 파악부터 계획 수립, 온실가스 배출권 할당까지 모든 과정에 비용이 든다”며 “대기업은 자본력이 좋으니 어느정도 감당이 가능하겠지만 규모가 작은 기업일수록 무엇 하나 손을 대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대기업과 차별화된 세심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온실가스 배출 양상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중소기업의 고탄소 업종은 대기업보다 분포가 넓다”며 “온실가스 평균 배출량을 봤을 때, 대기업은 석유정제업이 압도적이라면 중소기업은 화학제품 제조업이 가장 높긴 하지만 금속 가공, 비금속 가공, 펄프 종이 제조업 등 다른 업종에서도 높게 나타난다”고 말했다.

그래픽=이은현

업계는 업종별 온실가스 배출 원인이 다르다며 맞춤형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석회가공업의 경우 공정특성상 이산화탄소가 반드시 배출되고, 석탄을 연료로 쓰기 때문에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다. 반면 금속가공업은 전력 소모가 많아 고탄소 업종으로 분류된다. 이 같은 차이 때문에 전자는 공정 과정에서 온실가스가 덜 나오게 하는 기술개발이 필요하고, 후자는 전력 소모량을 줄이는 효율화 작업이 필요하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기업의 99.9%는 중소기업인데 업종과 사업체마다 필요한 지원책이 다르다”며 “단순히 비용만 지원해서는 효과를 거두기 어렵고 맞춤형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기부는 탄소중립을 위해 올해 4744억원을 들여 중소기업 2500곳을 지원하고, 매년 지원 대상을 늘려 2030년에 5700개 중소기업을 지원할 예정이다. 고탄소 10개 업종의 중소기업 6만7000개 중 3만4000개 기업에는 저탄소화 지원을 추진한다. 중기부 산하 기관들도 탄소중립형 스마트 공장 설립과 탄소중립수준 진단 등 지원에 착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