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인 기업 간 거래(B2B) 산업이자, 보수적인 문화로 유명한 방산·조선 등 이른바 ‘중후장대(重厚長大)’ 업계가 최근 브랜드 이미지 홍보에 힘을 쏟으며 소비자와 거리를 좁히려고 노력하고 있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군 레이다·전투체계 등을 만드는 한화시스템(272210)은 최근 유튜브 계정에 처음으로 기업 이미지를 홍보하는 영상을 올렸다. ‘나의 상상을 실현시키는 방법’이라는 제목의 영상에서 VR 아티스트 염동균씨는 한화시스템이 개발 중인 도심항공교통(UAM) 기체 버터플라이를 그리며 회사가 그리는 미래의 모습을 담았다. 그동안 주로 사실에 기반한 현장 스케치, 방산 제품 소개 영상을 올렸던 것과 다른 모습이다.
‘천궁-Ⅱ’를 개발한 LIG넥스원(079550)을 핵심 계열사로 두고 있는 LIG그룹은 2021년 신입 및 경력사원을 공개 채용한 지난해 11월 기업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CI를 변경하고 새로운 비전을 발표했다. 새로운 CI엔 불필요한 장식적 요소를 과감히 없앴고, 전문성과 미래적 기업 이미지를 담고자 했다. LIG는 새로운 핵심가치로 ‘개방’과 ‘긍정’을 강조했는데, 통상적으로 철저한 보안과 보수적인 조직문화로 대표됐던 방산업체 이미지를 타파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방산기업은 그동안 타 업종에 비해 브랜드 이미지 홍보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변화에 민감한 소비자보다는 주로 기업과 국가를 상대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래 먹거리 발굴을 위해 민수(民需·민간에서 필요한 것) 분야에 진출하면서 소비자와 직접 소통할 필요를 느끼고 브랜드 마케팅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방산업계와 비슷한 성격의 조선·에너지업계도 사명에서 ‘중공업’을 빼는 등 이미지 변신에 나섰다. 현대중공업그룹의 지주사인 현대중공업지주와 두산중공업은 이달 말 정기주주총회를 열고, 사명을 변경할 계획이다. 이들 기업의 새로운 이름은 각각 ‘HD현대’와 ‘두산에너빌리티’로, 모두 중공업을 뺀 자리에 미래사업 등 회사가 나아갈 방향을 담았다. 포스코강판도 ‘포스코스틸리온’으로 이름을 변경할 예정인데, 국내외 시장에서 회사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브랜드 가치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들 기업 역시 기존 주력 사업에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분야에서 미래 성장 동력 키우기에 주력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현대중공업지주는 지난해 모바일 헬스케어 서비스 기업인 메디플러스솔루션을 인수하는 등 신사업 분야에 대한 투자를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최근 약 2년간의 채권단 관리 체제에서 졸업한 두산중공업도 반도체, 3D 프린팅 등 새로운 먹거리를 적극적으로 발굴하며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내부적으론 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 등의 직급이나 호칭을 통합해 조직문화를 개선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수평적 문화를 중시하는 젊은 세대가 늘어나면서 이에 맞춰 인사 제도에 변화를 주는 것이다. 한화솔루션(009830)과 LIG넥스원은 수평적이고 자유로운 조직문화 조성을 위해 직원들의 호칭을 ‘프로’로 통일했다. LG에너지솔루션(373220)도 올해부터 임원을 포함해 구성원 간 호칭을 ‘○○님’으로 통합했다.
재계 관계자는 “최근 해외 수주가 잇따르는 등 국내 중후장대 기업들의 글로벌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브랜드 이미지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신성장 사업을 찾는 과정에서 외부와의 소통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자 더 적극적으로 기업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