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005930)의 지난해 온실가스 배출량이 전년 대비 11.4%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그룹 차원의 탄소배출 로드맵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재계에서 나오고 있다. 윤석열 20대 대통령 당선인이 탄소중립 속도 조절을 공약했지만, 글로벌 투자자들의 압박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삼성그룹은 삼성물산(028260)과 내부 싱크탱크 등을 통해 탄소중립 로드맵을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16일 삼성전자 사업보고서 등에 따르면 지난해 삼성전자 온실가스 배출량은 1919만9754톤CO2e(이산화탄소환산톤·온실가스를 이산화탄소 배출량으로 환산한 값)로 전년 대비 11.4% 증가했다. 삼성전자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2017년 1310만5766t, 2018년 1517만3000t, 2019년 1113만1587t, 2020년 1360만8258t 등으로 매해 10% 가량 늘어나는 추세다.
삼성전자의 온실가스 배출은 대부분 DS(반도체) 부문에 집중된다. 매해 90% 가량이 DS 부문에서 발생했다. 반도체 산업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는 ▲전기사용에서 발생하는 간접배출 ▲화석연료 사용에 따른 직접배출 ▲생산공정에서 이용되는 화학물질 배출로 발생하는 공정 배출로 나뉜다. 반도체 공정의 경우 전기 사용량이 워낙 많고, 초미세공정이 늘어날수록 사용되는 화학제품도 증가한다. 반도체 생산을 늘리는 만큼 탄소배출도 증가하는 구조다.
삼성전자는 이미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탄소중립에 대한 압박을 받고 있다. 지난달 7일 세계 3대 연기금 운용사인 네덜란드연금자산운용(APG)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000660), LG화학(051910) 등 국내 기업 10곳에 주주서한을 보내고 탄소배출 감축을 요구했다. 글로벌 연기금이 특정 기업에 탄소 배출 감축을 요구하는 주주서한을 보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APG는 삼성전자 지분 0.5%를 보유한 주주다. APG는 주주서한에서 삼성전자가 동종업계 대비 탄소배출량이 많다는 점을 지적했다.
유럽연합(EU)의 경우 탄소 집약 산업에 대한 금융기관의 투자를 금지하는 내용의 법안도 검토하고 있다. 탄소배출을 줄이지 않을 경우 유럽 투자자들의 투자 철회 등 압박이 거세질 우려가 있다. 에너지·환경정책 싱크탱크인 사단법인 넥스트는 삼성전자가 RE100(2050년까지 100% 재생에너지를 사용하겠다는 기업들의 협약)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 2030년 매출이 전망치 대비 약 23조원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국내 정권 교체와 상관 없이 삼성전자 입장에서 탄소중립은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삼성도 그룹 차원에서 탄소중립을 중요 과제로 삼고, 관련 로드맵 마련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삼성은 제조계열사와 금융계열사로 나눠 탄소중립 로드맵을 마련하는 작업이 상당 부분 진행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부터 DS 부문에 적용할 수 있는 자체 친환경 평가 지표 SEPI(Semiconductor Environmental Performance Index)도 개발했다. SEPI는 ▲반도체 친환경 기여 ▲협력회사 환경 관리 ▲사업장 환경 성과 ▲사용자 환경 편의 등 4가지 카테고리로 DS 부문의 환경 영향을 평가하는 지표다.
재계 관계자는 “차기 정부가 탄소중립 정책에 약간의 여유를 준다고 해도 삼성은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의 탄소중립 스케쥴에 맞춰야 한다”며 “국내 정치 변화와 상관 없이 삼성전자도 조만간 RE100 가입을 선언할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