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유가가 7일 배럴당 130달러선을 돌파하면서 국내 화학기업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플라스틱과 섬유 등의 원료가 되는 나프타(Naphtha·납사) 가격이 유가 상승으로 14년 여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국내 화학업체들은 나프타 상당 부분을 러시아에서 수입하고 있어 원재료 가격 상승과 수급 불안이라는 이중고를 겪게 됐다.
이날 블룸버그 등 외신에 따르면 전날 브렌트유는 장중 한때 18% 폭등해 139.13달러에 거래됐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장중 최고 130.50달러를 기록했다. 모두 2008년 7월 이후 최고가다. 원유 가격 상승으로 나프타 가격도 톤(t) 당 1000달러 넘어섰다. 지난 4일 기준 나프타 선물 계약 가격은 t당 1078.4달러를 기록했다. 전월 대비 423.25달러(70.56%) 인상된 가격으로, 2008년 6월(1080달러) 이후 14년만에 최고 수준이다.
‘석유화학의 쌀’로 불리는 나프타는 플라스틱과 섬유 등 각종 화학제품의 기초 원료로 쓰인다. 원유를 정제해 생산하다 보니 유가와 나프타 가격은 함께 움직인다. 여기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촉발한 나프타 수급 불안도 가격 인상을 부채질했다.
나프타 가격 인상은 화학기업의 전반적인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전망이다. LG화학(051910)과 롯데케미칼(011170) 등 나프타분해시설(NCC)을 보유한 기업들은 당장 직격탄을 맞게 된다. 이들 기업은 NCC에서 나프타를 열분해해 에틸렌, 프로필렌 등 플라스틱 제품의 기초원료를 생산한다. 나프타 가격 상승은 NCC 원가 상승과 직결된다.
이미 국내외 NCC업체들은 나프타 가격 상승으로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다. 지난 1월 나프타 가격이 t당 783달러까지 오르자 아시아 NCC업체 대부분이 적자로 돌아섰다. 국내 화학업체들은 t당 1000달러가 넘어서면 공장 가동을 멈추는 것이 적자 폭을 줄이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설명한다.
강동진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NCC 업체들은 공급 과잉에 더해 원재료 부담까지 커지며 수익성이 당분간 크게 악화될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이어지면 국내 NCC 가동률 저하가 불가피하며, 다운스트림 업체들까지 포함해 업계 전반의 수익성이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플라스틱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들은 제품 가격이 원가 상승폭만큼 오르지 못할 경우 수익성이 악화된다. 현재 국내에서 생산되는 에틸렌을 가장 많이 수입하는 중국이 제조업 가동률을 전반적으로 낮추면서 나프타 가격 상승 분을 제품 값에 반영하기 힘든 상황이다. 국내 화학기업의 중국 수출 비중은 40% 수준으로 알려졌다.
국내 화학업체들이 러시아산 나프타를 주로 수입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국책연구기관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에 따르면 지난해 러시아산 나프타가 국내 전체 나프타 수입액(43억8000만달러)의 23.4%를 차지했다. 아직 러시아산 나프타 수입이 금지된 것은 아니지만, 서방 국가들이 수출 제재에 나설 경우 국내 기업들은 다른 국가에서 나프타를 공수해야 한다.
유럽 역시 나프타 수입 물량 중 50%를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어 수출 제재가 시작될 경우 글로벌 나프타 품귀 현상이 벌어질 수 있다. 중동 등 특정 국가로 수요가 몰리면 추가적인 가격 상승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최근 나프타 수급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국내 업체들의 공급망 다각화도 쉽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한 화학업체 관계자는 “나프타 가격이 오른 만큼 플라스틱 제품 가격에 이를 반영해야 하는데, 최근 글로벌 수요가 전년 대비 대폭 줄어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지난 해에는 글로벌 수요 폭발로 풀캐파(full capa, 완전가동)를 돌렸는데, 지금은 공장 가동 중단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