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관련해 미국과 유럽연합(EU)이 대(對)러시아 제재에 나서면서 러시아에 공장을 두고 있는 한국 기업들이 긴장하고 있다. 과거 경제 제재 사례를 보면 수출기업도 타격이 예상된다.

25일 재계에 따르면 미국은 러시아에 대해 반도체, 컴퓨터, 센서 등의 수출을 제한하기로 했다. EU는 물론 우리 정부도 경제제재에 동참하기로 했다. 경제제재가 점차 강화되는 만큼 러시아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기업들은 부품 공급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커졌다. 현지 공장 운영사 관계자는 “부품 재고가 있는 만큼 당장 공장이 멈추지는 않는다”면서도 “사태가 장기화하면 정상적인 가동이 어려울 수 있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24일(현지시각) 러시아군 폭격을 받은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 외곽 군기지의 레이더 시설이 크게 파손되고 주변에 주차된 승용차가 널브러져 있다. /AP·연합뉴스

한국CXO연구소 집계 결과 2020년 기준 국내 72개 그룹 가운데 삼성과 현대차(005380) 등 16개 그룹이 러시아에 법인을 설립했다. 러시아에 설립한 법인 수는 53개로 우크라이나보다 41개 많았다. 그룹별로 살펴보면 현대차그룹의 해외법인이 18곳(34%)으로 가장 많았고, 삼성과 롯데 9곳, SK(034730)두산(000150) 2곳, LG(003550)와 포스코(POSCO)는 1곳 등이었다. 오일선 한국CXO연구소장은 “미국이 러시아에 고강도 금융 및 경제제재를 단행하면 국내 대기업들도 공장 가동 중단 등 직접적인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출도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러시아가 2014년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합병했을 때 경제제재가 이어지면서 우리나라의 대(對)러시아 수출이 급감했다. 한국무역협회 통계에 따르면 러시아 수출 규모는 2013년 111억4900만달러에서 2014년 101억2900만달러, 2015년 46억8600만달러로 줄었다. 지난해 수출 규모는 99억8000만달러로 여전히 2013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

금융제재에 따른 영향도 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미국은 러시아의 달러·유로·파운드·엔화 거래를 제한하고 VTB 등 총 1조 달러(약 1200조원) 자산을 보유한 러시아 대형은행들을 제재하기로 했다. 현지에서 달러 결제가 어려워지는 만큼 국내 기업들은 러시아 루블화로 대금을 받아야 한다.

문제는 루블화 가치가 사상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다. 24일 기준 달러 대비 루블화 환율은 84.95루블까지 치솟으며 전날보다 4.26% 상승했다. 1년 전보다는 13.7% 높다. 루블화의 가치가 떨어지는 만큼 우리 기업은 환차손을 보게 된다.

미국이 아직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지만, 국제 은행 간 통신협회(SWIFT) 결제망에서 러시아가 배제될 수도 있다. SWIFT 결제망은 전 세계 은행 간 송금이 가능한 결제망으로, 국내 기업들이 러시아와 수출입 대금을 주고받을 주로 사용한다. 만약 러시아가 SWIFT 결제망에서 퇴출될 경우 국내 기업들은 대금을 받기 위해 다른 경로를 마련해야 한다.

김꽃별 한국무역협회 수석연구원은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 현황 및 우리기업 영향’ 보고서에서 “과거 경제제재 때도 루블화 가치가 하락한 바 있어 달러·루블 환율의 추가 상승이 나타날 수 있다”며 “SWIFT 결제망에서 러시아가 배제되면 한국 기업은 대금결제 지연·중단에 따른 손해는 물론 우회 결제로 마련을 위한 추가 비용이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