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군사 분쟁으로 국내 조선업계의 주력 선종인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발주가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유럽연합(EU)이 에너지 도입선 다변화에 나설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국제 유가도 배럴당 100달러까지 치솟으면서 해양플랜트 발주가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국내 정유사들 역시 재고 평가 이익이 높아지는 반사이익을 누릴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23일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러시아와 이어지는 직결 가스관 ‘노르트 스트림-2′ 사업의 승인 절차를 중단했다. 노르트 스트림-2는 발트해 해저를 통과해 러시아의 천연가스를 독일로 직접 보내는 1230㎞ 길이의 가스관이다. 독일뿐 아니라 유럽 다른 국가들도 대(對)러시아 제재에 동참하면서 단계적으로 러시아 외 다른 국가에서 천연가스를 수입할 가능성이 크다. 유럽은 천연가스 수요의 40%를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이 건조한 이중연료 추진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대우조선해양 제공.

유럽이 천연가스 수입선 다변화에 나설 경우, 대표 운반 수단인 LNG선의 수요도 늘어날 수 있다. LNG선을 주력 선종으로 삼고 있는 한국 조선업계엔 호재다. LNG선은 척당 가격이 2억달러(2400억원)가 넘는 대표적인 고부가가치 선박이다. 국내 조선사들이 건조하는 선종들 중에서 가장 수익성이 높다.

현재 전 세계에서 LNG선을 건조할 수 있는 조선사는 손에 꼽힌다. 영하 163도의 극저온 탱크에 저장된 가스를 안전하게 운반하기 위해선 정교한 건조 기술이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후둥중화조선을 빼면 사실상 한국조선해양, 삼성중공업(010140), 대우조선해양이 유일하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유럽이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를 줄이는 과정에서 LNG선 발주가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했다.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수준으로 오르면서 해양플랜트 발주 시장이 되살아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해양플랜트는 1기당 가격이 1조원이 넘는 만큼 조선소엔 큰 일거리다. 통상 국제 유가가 배럴당 70달러가 넘어야 해양플랜트의 채산성이 확보돼 발주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국내 조선사들이 재고로 보유한 중고 시추선을 재매각할 기회가 생길 수도 있다. 현재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은 각각 3척과 2척의 드릴십 재고를 안고 있다.

현대오일뱅크의 석유·석유화학 제품 저장 시설. /현대오일뱅크 제공

국내 정유업계도 유가 상승에 따라 단기적으로 실적 개선이 이뤄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통상 국제 유가가 오르면 저유가 때 사들였던 원유 비축분의 가치가 상승하면서 재고 평가 이익이 높아진다. 정유사의 수익을 결정하는 핵심 지표인 ‘정제 마진(수익성)’까지 오르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 배럴당 1달러대에 머물렀던 싱가포르 복합 정제마진은 올해 2월 7달러 이상으로 올랐다. 최근 SK에너지, GS칼텍스, 에쓰오일 등 정유사들이 원유정제설비(CDU) 가동률을 끌어올리는 이유다.

다만 유가가 지나치게 오르면 석유 수요가 줄어 정제 마진이 하락할 수 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유가 변동성이 급격하게 커질 경우 유가는 올랐는데, 제품 수요가 줄어 정제 마진이 하락할 수 있다”며 “국제 유가 흐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