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시장이 호황을 보이고 있지만, 국내 조선업계는 당장 생산능력(CAPA)을 증대할 계획이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중국의 조선사들이 LNG선 시장 진입을 시도하는 상황에서 당장 공급을 늘리기보다 원천 기술 개발 등 내실을 다지는 데 집중하겠다는 전략이다.
11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한국조선해양은 최근 열린 컨퍼런스콜에서 당분간 LNG선 생산 시설 증대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한국조선해양 관계자는 “중국에서 신규 LNG선 시장에 진입하려는 조선사들이 나타나고 있다”며 “공급을 한번 늘리기 시작하면 기술 투자와 전문 인력 등을 유지해야 하는 만큼 현재로서는 증설 계획이 없다”라고 말했다.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010140)도 당장 증설 계획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국내 조선 3사의 LNG선 연간 생산 능력은 한국조선해양 24.6척, 대우조선해양 20척, 삼성중공업 20척 등이다.
한국조선해양의 설명처럼 최근 중국은 LNG선을 연달아 수주하고 있다. 중국 최대 국영 선박회사인 중국선박공업그룹(CSSC)의 자회사 후둥중화조선은 올해 1월 일본 선사 미츠이 OSK로부터 11억8000만달러(약 1조4000억원) 상당의 17만4000㎥급 대형 LNG선 6척을 수주했다. 이는 1월 글로벌 LNG선 발주량의 절반에 달하는 규모이자, 후둥중화조선의 단일 최대 규모 LNG선 계약이었다. 작년 12월에도 후둥중화조선은 국영 해운기업인 COSCO로부터 5억5400만달러 상당의 대형 LNG선 3척을 수주했다.
한국 조선사들은 중국에 맞서 생산 능력을 늘리기에는 부담이 크다는 입장이다. 자칫 공급 과잉으로 LNG선 가격이 떨어질 수 있고 중국이 자국 정부의 지원과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수주량을 늘릴 수 있어서다. 설비 확장으로 고정비는 늘었는데, 선가와 수주량이 떨어지면 수익 악화로 이어진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조선업 슈퍼사이클에 도입했다는 분석도 있지만, 당장 언제 다시 발주가 끊길지 알 수 없다”며 “특히 한국은 노동 시장이 유연하지 않아 한번 늘린 인력을 줄이기 어려워 역풍을 맞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한국 조선사들은 2000년대 중반 조선업 호황 당시 앞다퉈 독(Dock·배를 만드는 건조장)을 늘리고 설비를 추가로 도입했다. ‘말뫼의 눈물’로 알려진 스웨덴의 세계 최대 골리앗 크레인을 현대중공업이 사온 것도 이때였다. 하지만 2008년 금융 위기, 2010년대 중반 유가 급락 등의 여파로 글로벌 선박 발주가 끊기기 시작했다. 출혈 경쟁과 늘어난 고정비를 감당하지 못한 성동조선, STX조선해양 등이 법정 관리를 받는 신세로 전락했다. 현대중공업 등 대형 조선사들도 공장 부지와 연수원 등 유휴 자산을 매각했고 전남 군산조선소는 준공 7년 만인 2017년에 문을 닫았다.
국내 조선사들은 당장 생산능력을 늘리기 보다 원천 기술을 개발해 LNG선의 수익성을 높이는 게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국내 조선 3사가 LNG선에 적용하고 있는 ‘멤브레인형 화물 탱크’ 설계 원천 기술은 프랑스 GTT가 보유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국내 조선사들은 LNG선 1척을 만들 때마다 선박 가격의 약 5%를 로열티로 지급한다. 지난해 한국이 68척의 LNG선을 수주한 점을 고려할 때, 선가 2억달러를 기준으로 6억8000만달러(약 8100억원)를 로열티로 지급한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도 원천 기술 개발 확보 노력을 이어가고 있지만, 아직 시장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2014년 국내 조선 3사와 한국가스공사는 10년간의 연구 끝에 화물 탱크 설계 기술 KC-1을 공동 개발했다. 그러나 해당 기술이 적용된 LNG선 화물 탱크 외벽에 결빙 문제가 발생했고 수리 이후에도 똑같은 문제가 발견돼 지금도 운항을 못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해외 선주들이 LNG선 발주 과정에서 KC-1이 아닌 GTT 기술 적용을 요구하고 있다”며 “새로운 원천 기술 개발 없이는 고가의 로열티 지불이 장기화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현재 정부는 2024년까지 약 252억원을 투입해 일명 한국형 액화천연가스(LNG)선 화물창 개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