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가 활성화돼 인프라(기반시설) 투자가 늘어야 일감을 수주할 수 있는 전선업계가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국내 산업의 저성장 기조는 한동안 유지될 것이란 전망에 따른 것이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오는 3월 5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앞두고 있는 대한전선(001440)은 지난해 12월 내놨던 증권신고서의 핵심투자위험 일부분을 수정했다. 이전엔 국내 시장 성장성에 대해 “산업 전반적인 수요가 정부의 확장적인 재정정책으로 인해 증가할 것으로 보여 전선업체간 경쟁이 심화됨에도 시장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지만, 지금은 “산업 전반적인 수요가 정부의 확장적인 재정정책으로 인해 단기적으로는 증가할 것으로 보이나 업계 전반적인 경쟁심화, 산업의 낮은 성장성 등 저성장 기조는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고 수정됐다. 즉 국내 시장 전망이 ‘확대’에서 ‘현상 유지’로 바뀐 것이다.
이에 대해 대한전선 측은 “전선산업은 이미 성숙기에 접어든 만큼 장기적 시각에 따른 신중한 투자가 필요하다”며 “국내 시장의 단기 성장 가능성만 언급하기보단 여러 위험성에 대해 투자자들에게 알려야 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전선업은 경기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산업이다. 경기가 확대돼야 인프라 투자계획이 집행될 수 있고, 건설·제조·설비투자 등 각종 산업 공정이 활발하게 돌아가야 케이블 수요가 늘어난다. 그러나 최근 경기 전망은 암울하다. 한국경제연구원이 매출액 기준 600대 기업 대상으로 기업경기실사지수(BSI)를 조사한 결과, 이달 전망치는 96.5에 불과했다. 100보다 낮으면 경기를 부정적으로 보는 기업이 더 많다는 의미다.
제조업은 94.2로 비제조업(99.4)보다 낮았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건설 분야 BSI 역시 11월 기준 88.4에 불과했다. 정부가 지난해 3월부터 600조원 이상의 확장재정을 예고했고, 지난해 12월 607조원의 사상 최대 규모 예산을 확정했지만 얼어붙은 기업 심리는 여전한 셈이다.
이에 전선업계는 해외시장 공략에 힘을 쏟고 있다. LS전선의 경우 지난 2018년 7월 착공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공장이 최근 완공돼 조만간 양산을 시작한다. 이 공장은 인프라용 가공 전선과 건설 등에 사용되는 중저압 전선을 생산하는데, 2025년 1억달러(약 1202억원) 매출이 기대되고 있다. 같은 제품을 생산하는 이집트 공장 역시 지난해 1월 양산을 시작했다. 특히 올해는 해저케이블의 미국 시장 확대를 공략한다는 계획이다. LS전선 관계자는 “미국의 경우 이전까지 풍력발전이 대부분 사막에 있었는데, 최근 정부 지원 등에 힘입어 해상풍력발전 시장이 확대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며 “올해는 미국 등 해외 해저케이블 시장에 집중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대한전선 역시 해외 생산기지를 확대 중이다. 대한전선 관계자는 “이번 유상증자로 5000억원을 조달하면 2000억원은 해저케이블 공장 건설 등 시설자금으로 활용할 계획인데, 이는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생산설비 확장을 염두에 둔 것”이라며 “지속적으로 해외 사업을 확장 중이며, 인력도 점차 늘려가고 있다”라고 말했다.
국내도 아예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초고압 지중케이블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가 맞지만, 해상풍력 등에 쓰이는 해저케이블과 송전 효율성을 높인 친환경 초전도 케이블 등은 아직 시장 확대 가능성이 남아있다는 분석이다. 전선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신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펴고 있는 만큼 국내 해저케이블 시장이 커질 수 있고,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영향에 따라 초전도 케이블 수요도 늘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