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이어 유럽이 원자력을 친환경 에너지원으로 분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가운데 탈(脫)원전 정책을 내세웠던 정부도 향후 5년간 미래 원자력 분야에 2조7000억원 규모의 투자를 결정했다. 두산중공업 등 국내 원전업계는 수혜를 기대하는 분위기다.
2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최근 원자력진흥위원회에서 소형모듈원전(SMR)과 원전 해체 연구·개발(R&D) 등에 대한 지원책이 명시된 ‘제6차 원자력진흥종합계획’을 심의·의결했다. 원자력진흥종합계획은 5년마다 수립하는 원자력 진흥의 최상위 법정 계획이다.
전 세계적으로 SMR을 비롯한 원전을 친환경 발전 모델로 인정하는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 EU(유럽연합)는 원자력을 녹색분류체계(Green taxonomy)에 포함할지 결정을 앞두고 있는데, 독일 등 일부를 제외한 다수의 국가가 찬성하고 있다. 만약 원전이 녹색분류체계에 편입되면 1조유로 규모의 그린딜 예산을 원전에 쓸 수 있고, 기업들도 녹색채권 발행 등 자금 조달이 쉬워진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역시 이달 원자력 발전을 무공해 전력으로 포함한 2050년 탄소중립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차세대 원전 기술 중 주목받는 건 SMR이다. 영국 국립원자력연구소에 따르면, 오는 2035년까지 전 세계에서 SMR 650~850기 건설이 추진돼 시장 규모가 최대 4000억파운드(약 637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나라 정부도 총사업비 5832억원에 달하는 혁신형 SMR 개발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조사를 내년에 신청할 계획이다. 이어 2026년까지 요소기술을 개발하고, 2028년 표준설계 인허가를 획득하는 것이 목표다.
이에 두산중공업을 비롯한 한국 기업들도 다시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두산중공업은 미국 원전 기업 뉴스케일파워와 손잡고 미국 발전사업자 UAMPS가 미 아이다호주(州)에 추진하는 소형모듈원전 건설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또 미국의 엑스에너지가 개발 중인 주기기 제작 설계를 맡기로 했다.
대우조선해양은 해양용 SMR 기술을 개발하려 한국전력기술(한전기술(052690))과 손을 잡았다. 해양 부유체 설계 제작 기술을 보유한 대우조선해양은 해양용 소형 원전인 ‘BANDI-60′을 개발한 한전기술과 해양부유식 원전개발 사업에서 시너지를 내겠다는 방침이다. 현대엔지니어링 역시 한국원자력연구원·캐나다 정부 등과 함께 캐나다에서 소듐냉각형 SMR 건설에 나설 계획이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캐나다 SMR에서 설계·조달·시공(EPC) 물량을 담당한다.
글로벌 기업에 대한 지분 투자도 활발하다. SMR 시장에서 가장 주목받는 업체인 미국 뉴스케일파워의 경우 두산중공업과 삼성물산(028260), GS에너지 등이 잇달아 투자했다. 두산중공업은 지난 2019년 4400만달러에 이어 올 7월 6000만달러를 투자해 뉴스케일파워 SMR 주기기 중 상당수 제작 물량을 사전에 확보해둔 상태다. 삼성물산은 뉴스케일 SMR 건설을 위한 EPC 물량 중 일부를 가져간다.
원전업계 관계자는 “뉴스케일파워가 미국 증시 상장을 추진하는 등 사업 보폭을 확대하면서 이 업체에 투자한 한국 기업들도 수혜를 입을 전망”이라며 “세계 각국이 신재생에너지만으로는 탄소중립이 불가능하다는 인식을 하게 되면서 SMR을 중심으로 글로벌 원전 시장이 빠르게 커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