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고급 휘발유 소비량이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고급 휘발유 주유를 권장하는 수입차가 펜트업(pent-up·억눌림) 소비 트렌드와 맞물리면서 급증한 덕분이다. 정유업계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와 휘발유 가격 상승에도 고급 휘발유가 탄탄한 수요를 유지하는 데 주목하며 시장 공략 속도를 높이고 있다.
22일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지난 10월 고급 휘발유의 하루 평균 소비량은 6161배럴로 1년 전 같은 기간(5065배럴)보다 22% 늘었다. 같은 기간 보통 휘발유의 하루 평균 소비량은 20만8677배럴에서 21만548배럴로 0.9% 증가하는데 그쳤다. 올 1~10월 누적 기준 고급 휘발유 소비량은 188만5000배럴로, 전년 동기(140만9000배럴) 대비 34% 증가했다.
휘발유는 옥탄가를 기준으로 보통, 고급으로 나뉜다. 옥탄가는 휘발유의 불완전 연소로 이상 폭발이 일어나는 현상인 ‘노킹’에 대한 저항성을 뜻하는데, 옥탄가가 높을수록 휘발유가 이상 폭발을 일으키지 않고 잘 연소된다. 반대로 옥탄가가 낮으면 에너지 효율을 저해하고 엔진 출력 저하 및 수명 단축의 원인이 된다. 현재 국내 정유사의 보통 휘발유 옥탄가는 91~93, 고급 휘발유는 99~100 수준이다. 해외에선 옥탄가가 100을 넘는 초고급 휘발유도 있다. 독일 정유사 아랄이 판매하는 옥탄가 102의 ‘얼티메이트(Ultimate)’가 대표적이다.
국내 고급 휘발유 소비량이 늘어나는 배경에는 수입차 시장의 성장이 있다. 유럽 자동차 제조사는 자사가 생산하는 고성능 차량의 엔진 출력 저하를 막기 위해 고급 휘발유를 넣을 것을 권장하고 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올해 1~11월 수입차 누적 등록대수는 전년 동기 대비 3.6% 증가한 25만2242대로 집계됐다. 이 추세가 이어지면 역대 최다 판매량을 기록한 지난해(27만4859대)의 기록을 넘어설 전망이다.
국산 자동차 시장에서도 고급화·대형화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도 고급 휘발유 시장의 확대 요인 중 하나다. 업계 관계자는 “고급 휘발유는 보통 휘발유보다 리터(ℓ)당 100~200원 비싼데도 소비량이 늘어난 것을 보면 일시적인 수요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유업계도 시장 공략에 적극 나서고 있다. 11월 말 현재 정유 4사(GS칼텍스·현대오일뱅크·SK에너지·에쓰오일(S-OIL))의 고급 휘발유 취급점은 1190곳으로 지난해 12월(1035곳)보다 155곳 늘었다. 고급 휘발유를 취급하려면 별도 저장 설비와 주유기를 갖춰야 한다. 각 사의 올해 11월까지 누적 점유율은 GS칼텍스가 43.8%로 가장 높고 현대오일뱅크(22.5%), SK에너지(19.4%), 에쓰오일(14.3%) 순이다. 현대오일뱅크의 경우 2019년까지만 해도 시장 점유율이 9%에 불과했는데, 3년 새 2배 이상 증가했다.
신상품도 꾸준히 출시되고 있다. 현대오일뱅크는 지난 14일 국내 최초로 옥탄가 102 이상인 초고급 휘발유 ‘울트라카젠’을 출시했다. 기존 고급 휘발유 브랜드인 ‘카젠’과 함께 고급 휘발유 시장을 공략한다는 전략이다. SK에너지도 지난 10월 기존 고급 휘발유 브랜드인 ‘솔룩스’에서 청정성을 두배 이상 높인 ‘솔룩스 플러스’를 출시했다. 차량용 연료의 청정성이 높아지면 연료 연소 과정에서 발생하는 엔진 내 찌꺼기가 줄어들고 이를 통해 엔진 보호, 수명 연장, 연비 개선 등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