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업계의 대표적 수익 지표인 정제마진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인 ‘오미크론’ 확산 우려로 급락했다. 정유업계는 오미크론이 미칠 영향을 예의주시하면서도 조심스레 낙관론을 펼치고 있다. 정제마진 하락은 최근의 급등세에 따른 조정일 가능성이 있는 데다, 미국 휘발유 재고가 4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는 등 여전히 수요가 받쳐주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오미크론 때문에 석유제품 수요가 단기적으로 영향을 받을 순 있어도 내년 회복세에는 지장이 없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8일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지난달 19일 기준 미국 휘발유 재고는 2억1139만배럴로 2017년 11월 3일(2억954만배럴) 이후 4년 만에 가장 낮았다. 한 주 뒤인 26일엔 2억1542만배럴로 소폭 늘어나긴 했지만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6월까지만 해도 2억4000만배럴대를 유지했지만 이후 계속 줄어들고 있다. 대한석유협회 관계자는 “11월 19일 기준 미국 내 공장 가동률은 88.6%로 높은 편”이라며 “휘발유를 적게 생산해 재고가 없는 것이 아니라 수요가 많은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이날 미국의 하루 휘발유 수요는 944만배럴로 1년 전 같은 기간(828만배럴)보다 14% 늘었다.
국내 정유업계가 휘발유 소비 흐름에 주목하는 이유는 향후 정제마진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어서다. 미국은 휘발유 최대 소비 국가로, 전 세계 휘발유의 10%가 미국에서 쓰인다. 정유업계의 수익 지표인 싱가포르 복합정제마진은 8월 다섯째주 배럴당 3.8달러에서 10월 넷째주 8.0달러로 8주 만에 110% 급등했다가 지난달 넷째주 3.3달러로 59% 급락했다. 중국의 석유제품 수출 물량 확대와 오미크론 확대 우려 등이 겹친 결과다. 정제마진은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가와 수송비 등을 뺀 마진을 뜻하는데, 통상 4~5달러보다 높아야 정유사는 이익을 낸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지금의 정제마진 하락은 최근 급등세에 따른 조정이 어느정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며 “석유제품 수요가 늘어야 정제마진도 상승하는데, 미국을 비롯한 세계 휘발유 수요가 받쳐주는 만큼 정제마진의 추가 하락폭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여기에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사인 아람코가 지난 5일(현지시각) 아시아와 미국으로 수출하는 내년 1월 인도분 아랍 경질유 공식판매가격(OSP)을 이달 대비 60센트 인상한 점도 정유업계가 오미크론 공포의 확대해석을 경계하는 이유다. 아람코는 석유를 출고할 때 두바이유 등 국제 표준 유종 시세에서 일정 금액을 더하거나 빼서 출고한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아람코가 아시아, 미국 시장의 OSP를 인상했다는 것은 해당 지역의 석유제품 수요 회복이 충분할 것이란 전망에 따른 것”이라며 “가격을 올려도 시장점유율을 유지하는 데 문제가 없다는 판단인 만큼 정유업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정유업계는 공급 측면(중국의 석유제품 수출 확대)과 수요 측면(오미크론) 위험이 모두 반영된 만큼, 내년 정제마진은 횡보 또는 우상향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다만 당장 4분기에 미치는 영향의 크기는 가늠하기 어렵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4분기 초까지는 상황이 괜찮았지만 최근 들어 상황이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며 “국제유가가 80달러 수준에서 70달러 밑까지 떨어졌다가 다시 70달러선을 회복하는 등 단기간 변동폭이 큰 데다 오미크론의 치명률 등이 아직 명확하지 않아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