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이 2017년에 문을 닫은 전북 군산조선소를 재가동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올해 선박을 대거 수주해 3년 치 일감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군산 지역 내 조선기자재 업체들은 군산조선소의 재가동을 기대하고 있다.

7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은 군산조선소 재가동과 관련해 전북, 군산시와 협의에 들어갔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지자체와 꾸준히 논의 중이며 현재 다양한 활용 방안을 검토 중인 단계”라고 밝혔다. 가삼현 한국조선해양 부회장도 지난달 대한조선학회 정기총회에 참석한 자리에서 “조만간 구체적인 활용 방안을 내놓겠다”고 말했다.

일감이 없어 텅 비어 있는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조선DB

현대중공업이 군산조선소 재가동 검토에 들어간 것은 올해 선박을 대거 수주한 영향이 크다. 현대중공업은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군산조선소 재가동에 부정적인 입장이었으나 올 한 해에만 3년 치 일감을 확보하면서 군산조선소에 수주 물량을 일부 분배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조선 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 연간 수주 목표량의 135%에 달하는 227억달러(약 27조원) 상당의 물량을 수주했다. 이는 작년 1~10월 누적 수주량보다 251% 많다.

1조2000억원을 들여 2010년에 문을 연 군산조선소는 25만톤(t)급 선박 4척을 한 번에 건조할 수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독(dock·배를 만드는 건조장) 1기와 1650t급 갠트리 크레인(일명 골리앗 크레인)을 보유한 대형 조선소다. 초대형 유조선 등 선박 70여척을 건조하며 매년 1조원 안팎의 매출을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2015년 말부터 이어진 ‘수주절벽’의 직격탄을 맞으면서 2017년 7월 문을 닫았고 지금까지 4년이 넘도록 방치돼 있다.

조선업계에선 군산조선소의 재가동이 결정될 경우, 이르면 내년 하반기부터 상업 생산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우선 올해 수주한 선박들의 설계를 마무리하고 군산조선소의 설비를 정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규모 인력 배치도 필요하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과거 군산조선소가 정식으로 문을 열기 전에도 울산조선소의 일감이 넘치자 블록을 배정받아 생산했던 전례가 있다”고 말했다.

한때 현대중공업의 협력사였던 기자재 업체들은 군산조선소 재가동 검토 소식에 반색하면서도, 반신반의하는 모양새다. 지난 수년 동안 지역 정치인들이 군산조선소 재가동을 선거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실현된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대선 공약으로 군산조선소 재가동을 약속하기도 했다. 2017년 최길선 당시 현대중공업 회장은 문 대통령에게 “2019년에 재가동할 수 있게 준비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지난해 5월 번영중공업의 텅 빈 공장 모습. 한때 현대중공업의 1차 협력사였던 번영중공업은 군산조선소가 문을 닫으면서 일감이 끊겼다. /번영중공업 제공

2017년 군산조선소가 폐쇄된 뒤 군산의 조선업 생태계는 망가진 상태다. 이듬해 GM 군산공장까지 철수하면서 지역 제조업 생태계는 더 어려워졌다. 군사의 한 조선기자재업체 임원은 “지난 4년간 5000명이 넘던 숙련공들이 군산을 떠났다”라며 “지역 경제를 뒷받침해온 중견기업들도 이미 매각돼 사실상 산업 생태계가 무너졌다”고 말했다.

실제로 현대중공업의 1차 협력사였던 JY중공업은 올해 풍력발전 설비 제조사 씨에스윈드(112610)에 매각됐다. JY중공업은 한때 선박 블록을 생산하며 연간 300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린 군산의 대표 중견기업이었지만, 군산조선소 폐쇄 후 경영난에 시달리다 이듬해 회생절차에 진입했다.

남아있는 다른 업체의 사정도 녹록지 않다. 군산조선소 폐쇄 후 80곳이 넘던 군산의 조선기자재 업체들은 현재 10여개로 줄었다. 현대중공업의 1차 협력사였던 번영중공업의 경우 연 매출이 100억원에서 20억원으로 쪼그라들었고, 100명이 넘던 직원도 절반이 떠났다. 최근 번영중공업 등 기자재업체들은 기존 장비와 인력을 활용해 풍력발전기 하부구조물 생산으로 업종 전환을 추진하고 있지만, 군산조선소가 다시 문을 열어야 안정적인 일감을 확보할 수 있다.

또 다른 조선기자재업체 관계자는 “(군산조선소 재가동이 결정돼도) 설비 정비와 인력 확보에 1년이 걸릴 수도 있다”며 “현대중공업의 판단이 빨리 나와야 현장에서도 차질 없이 준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단기적인 물량배정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군산조선소가 운영될 수 있는 대책을 현대중공업과 지자체가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