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은 추락사고로 2019년 3월부터 운항이 중지된 ‘보잉 737 맥스’ 항공기의 운항이 재개되면서 사고 전에 이 항공기 구매 계약을 했던 국내 항공사들이 고민에 빠졌다. 내년 4분기부터 순차적으로 국내 100여대의 보잉 737 맥스가 도입될 예정인데, ‘사고기’란 오명으로 소비자가 탑승을 기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거리 위주로 운항하는 보잉 737 맥스 특성상 중국 영공을 통과하는 노선에 많이 투입되는데, 미중 갈등 여파로 중국 정부가 이 항공기의 영공 통과를 장기간 금지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24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지난 22일부로 보잉 737 맥스의 국내 운항을 허용했다. 2019년 3월 14일 국내 영공 통과 및 이착륙을 금지한 지 2년 8개월 만이다. 보잉 737 맥스는 기체 결함으로 2018년 10월 인도네시아에서, 2019년 3월 에티오피아에서 연달아 추락한 기종이다.
보잉 737 맥스는 기존 737 시리즈의 개량형으로 항속거리(이륙부터 연료를 전부 사용할 때까지 비행거리)를 1000㎞가량 늘려 한번 비행에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 발리까지 비행할 수 있는 게 특징이다. 당시 국내 항공사들은 노선 다각화를 위해 보잉 737 맥스 구매에 적극 나섰다. 그러나 사고 직후 각국 정부에서 운항 중지 조처를 내리면서, 보잉 737 맥스 구매 계약을 체결한 항공사들도 도입을 잠정 연기했다. 당시 대한항공(003490)과 제주항공(089590)은 옵션 물량을 포함해 각각 50대씩 들여올 계획이었다. 티웨이항공(091810)도 보잉 737 맥스를 최대 8대까지 도입하려고 했다.
국토부의 운항 재개 허용으로 국내 항공사들은 보잉사와 기존에 계약했던 737 맥스 인도 논의를 시작했다. 국내 항공사들은 이르면 내년 4분기부터 이 항공기를 국내에 도입할 계획이다.
문제는 보잉 737 맥스를 도입 이후다. 우선 소비자들의 신뢰 회복에 시간이 필요할 전망이다. 결함이 개선돼 각국에서 운항을 허가했어도, 소비자들 입장에선 두 차례 추락사고를 낸 보잉 737 맥스 탑승을 불안해할 수 있다. 실제로 로이터통신이 국제 여론조사기관 입소스와 지난해 12월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 소비자 5명 중 3명은 보잉 737 맥스에 탑승하지 않을 것이라고 응답했다. 아직 운항 허가를 내리지 않은 중국도 변수로 남아 있다. 외신을 중심으로 중국 정부가 보잉 737 맥스의 운항 재개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미·중 갈등이 격해지면 영공 통과 금지 조치를 장기간 풀지 않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항공사로선 기재 운용에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항공사들이 선제적으로 계약을 파기하기도 어렵다. 구매 계약을 취소할 경우 5~10%의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 보잉 737 맥스의 한 대당 가격은 1억1000만달러로 알려졌다. 한화로 1300억원 수준이다. 국내 항공사가 계약 물량 50대의 구매 계약을 전량 취소할 경우 위약금만 최대 6500억원에 달한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계약을 파기할 수도 무작정 도입하기도 쉽지 않은 진퇴양난의 상황”이라며 “보잉사를 설득해 도입 시기를 최대한 미루는 게 최선”이라고 말했다.
항공업계에서는 보잉 737 맥스 도입이 코로나19 여파로 적자와 자본 잠식 상태에 빠진 국내 항공업계의 자금난을 가중시킬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보잉 737 맥스를 제대로 운항하지 못하면 매달 수억원의 손실이 발생할 수 있어서다. 앞서 이스타항공은 2018~2019년 국내 항공사 중 가장 먼저 보잉 737 맥스 2대를 도입했으나, 연이은 추락 사고와 셧다운으로 3년 가까이 계류장에 세워 두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정류비와 정비비, 리스료 등에 매달 5억~6억원을 지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한항공과 제주항공은 모두 “보잉과 협의에 들어갔으며 도입 일정 등을 조율 중”이라고 했다. 티웨이항공만 내년 4분기로 도입 시기를 확정했다. 티웨이항공 관계자는 “안전성 확인을 거쳐 내년 4분기쯤 보잉 737 맥스 2대를 리스 방식으로 도입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현재 유일하게 보잉 737 맥스를 보유 중인 이스타항공은 2대 모두를 반납하고 보잉 737-800 여객기 2대로 내년 2월 국내선 운항을 재개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스타항공 관계자는 “기재 단일화와 운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 직격탄으로 항공사들의 유동 자금이 바닥난 상황”이라며 “보유 항공기도 운항을 멈춘 상황에서 새로운 기종까지 들여올 경우 막대한 손실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