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배터리 업체의 동유럽 공장 증설이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 보조금 승인 지연으로 늦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지 정부는 공장을 유치하면서 각종 인센티브를 약속했는데, EC가 승인을 지연하고 있다. 최근 EC가 공정성을 문제로 한국 배터리 업체에 대한 인센티브 제공에 제동을 걸거나, 승인 심사를 오래 끄는 일이 계속되고 있다.
2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EC는 2년째 삼성SDI(006400)의 공장 증설에 대한 헝가리 정부의 지원 계획을 조사하고 있다. EC는 헝가리 정부의 삼성SDI 지원 방안에 공공성이 의심된다며 2019년 12월 조사에 착수했다. 최근 EC는 조사 기간 연장을 결정했고, 헝가리 정부는 이에 추가 자료를 체줄한 것으로 전해진다. 헝가리 정부는 삼성SDI 3공장에 1억800만유로(약 1450억원)를 지원하기로 했었다.
삼성SDI는 헝가리 북부 괴드 지역에 배터리셀 1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삼성SDI는 2019년부터 1공장 인근에 2공장 건립을 추진하고 올해부터 공사에 들어갔다.
LG에너지솔루션의 폴란드 배터리 공장 증설에 대한 지원안도 EC의 조사를 받고 있다. EC는 지난해 8월부터 폴란드의 LG에너지솔루션 공장 증설 지원 계획이 EU 규정에 부합하는지 조사하고 있다. 폴란드 정부는 해당 공장 증설에 9500만 유로(약 1326억원)를 지원하기로 했다.
SK온(전 SK이노베이션(096770) 배터리부문)도 헝가리 이반차에 연산 30GWh 규모의 전기차 배터리 3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현재 공장 부지 조성과 설계 작업이 진행 중이다. SK온은 총 2조6000억원을 투자해 30GWh 규모의 공장을 건설하기로 했다. SK온이 유럽에 건설하는 배터리 공장 중 최대 규모의 투자다.
SK온 3공장도 헝가리 정부의 지원 방안이 확정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헝가리 정부는 최고 수준의 인센티브 제공을 제안했으나 EC 승인 절차가 남아 있다.
EU는 역내에서 발전이 덜 된 지역의 경제 발전과 고용 지원을 유도하기 위해 공장 건립 시 보조금을 지원해주고 있다. EU는 회원국이 보조금을 신청하면 지원금 조건 충족 여부 예비조사를 통해 검토하고 이를 승인한다. 이 정책에 따라 EU 회원국은 자국 기업과 해외 기업의 투자 유치 시 EU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동유럽 정부가 한국 배터리업체에 제공하는 인센티브 중 투자금 부분은 상당수 이 보조금에서 나온다.
예비조사에서 보조금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판단할 경우 ‘심층 조사’로 불리는 정식 조사를 실시한다. 현재 LG에너지솔루션의 폴란드 공장과 삼성SDI의 헝가리 공장이 심층 조사 단계에 있다.
EC는 지역별 보조금 지원 상한비율 준수 여부, 보조금 지급으로 인한 EU 내 다른 지역의 생산시설 이전·폐쇄 등 경쟁왜곡 여부, 인센티브 효과 등을 기준으로 심층조사를 벌여 승인 여부를 판단한다. 심층 조사 개시 후에는 승인, 불승인, 조건부 승인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심층 조사는 정해진 기한이 없다.
한국무역협회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1년부터 10년간 EC의 심층 조사를 거친 뒤 보조금 지급이 승인된 비율은 36%에 그친다. 특히 대기업에 대한 보조금 지원에 대해서는 ‘현미경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유럽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 배터리 내재화를 추진하자 EU가 한국 배터리 업계를 견제하려는 목적으로 보조금 지급 심사를 지연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한 배터리 업체 관계자는 “동유럽은 저렴한 인건비와 정부의 각종 인센티브 제공 등으로 국내 배터리 업체가 선호하는 지역인데, 보조금 심사가 지연되면 공장 건립의 이점이 많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