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정부가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크게 상향하면서 산업계의 온실가스 감축 부담이 매우 커진 것이 사실”이라며 규제보단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산업계의 탄소감축을 유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회장은 17일 서울 중구 상의회관에서 대한상의와 산업통상자원부가 공동으로 개최한 ‘제2차 탄소중립 산업전환 추진위원회’에서 “산업계가 현실적으로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많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탄소중립 산업전환 추진위원회는 정부와 경제계가 산업부문의 탄소중립 이행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기구로 지난 4월에 출범했다.
산업계 역시 탄소중립이 ‘생존의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최 회장은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조만간 탄소국경조정제도를 통해 통상 규제에 나설 것이라는 점, 글로벌 투자기관의 탄소중립 실천 압박 등을 거론하며 “글로벌 관점에서 탄소중립 이슈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이제 탄소중립을 향한 마라톤이 시작되고 있고 선진국에 비해 출발마저 늦었다”며 “민관이 협력해서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제도를 어떻게 만들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회장은 산업계가 탄소중립을 추진하기 위한 환경이 만들어져야 하는만큼, 규제 위주의 관점보다 기업을 포지티브하게 이끌 방법은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렇지 않으면 기업들로서는 목표는 높고 비용은 많이 들기 때문에 어렵다면서 미루거나 안된다는 말만 반복할 수밖에 없다”며 “탄소감축을 잘하는 기업에게 더 많은 인센티브를 부여해 혁신적 탄소감축 기술이 더 많이 나올 수 있도록 촉진하는 것도 한 가지 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산업계는 2050년 탄소중립 이행을 위해 정부에 ‘4R정책’을 제안했다. ‘4R’은 ▲혁신기술 개발·투자지원(R&D) ▲신재생에너지 활성화(Renewable Energy) ▲자원순환 확대(Resource Circulation) ▲인센티브·제도적 기반 마련(Rebuilding Incentive System) 등을 말한다.
산업계는 먼저 혁신기술 개발과 투자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대한상의에 따르면 한국의 탄소중립 기술은 최고 수준인 유럽연합(EU)·미국 대비 80% 수준으로, 기술 격차는 3년 정도 뒤쳐져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대한상의는 “주요국에서 탄소중립에 막대한 투자(2030년까지 미국 1870조원, EU 1320조원, 일본 178조원)를 계획하고 있는 만큼 우리 정부에서도 11조9000억원 수준인 내년 탄소중립 예산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재생에너지 역시 확대돼야 한다. 국내 재생에너지 발전비중은 올해 기준 5.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다. 협소한 입지와 높은 인구밀도, 주민수용성 등 재생에너지 확대 제약 요인도 많은 상황이다. 대한상의는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는 ‘RE100′ 참여기업에 대한 송배전망 이용료 인하, 재생에너지 전력구매계약(PPA) 확대 여건 조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탄소중립 이행을 위해서는 자원순환도 필수적이다. 한국은 하루 약 500만톤(t)씩 폐기물이 발생하고, 1인당 플라스틱 폐기물 배출량도 세계 3위 수준이다. 자원순환 확대를 위해 화석연료와 원료를 대체할 수 있는 바이오․신소재 기술 R&D 및 시장 창출 지원, 시멘트 생산시 석회석을 대체하는 혼합재 사용 비율 확대, 플라스틱 재활용시 온실가스 감축실적 인정, 폐기물 소각재 무해화 기술 R&D 지원 등이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마지막으로 기업의 자발적․혁신적 노력을 촉진하기 위해 탄소감축 성과를 공정하게 측정하고 이에 비례해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성과기반 인센티브 시스템’을 새로 마련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한편 이날 산업부는 산업·에너지계와 협력해 탄소중립 지원정책의 첫 단추로 ‘탄소중립 산업·에너지 R&D 전략’을 발표했다. 이날 제기된 기업들의 의견을 수렴해 다음달 발표 예정인 ‘탄소중립 산업대전환 비전과 전략’에 반영한다는 계획이다.
김녹영 대한상의 지속가능경영센터장은 “탄소중립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맞아 국내 선도기업을 중심으로 대규모 투자를 속속 발표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많은 애로사항이 제기되고 있다”면서 “대한상의는 앞으로도 탄소중립 이행과정에서 산업계의 요청사항을 정부에 전달해 기업의 투자가 원활히 이루어지도록 하는 가교역할을 충실히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