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시 플레저(healthy pleasure)!” 즐겁게 건강을 관리한다는 뜻이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이후 달리기와 등산, 자전거 라이딩 같은 신체 단련은 물론이고, 식단 관리와 정신건강 관리에 ‘즐거움’이 핵심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팬데믹이 지속가능한 건강관리의 중요성을 부각시킨 가운데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1981~2010년생)의 재미 추구 경향, 이를 겨냥한 러닝 애플리케이션(앱)과 명상 앱 등 다양한 헬스 관리 앱 개발 경쟁과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게임화) 트렌드가 맞물린 덕분이다. ‘이코노미조선’이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헬시 플레저 시장을 들여다봤다. [편집자주]
10월 21일 오후 5시 모바일 러닝 애플리케이션(앱) 스트라바(Strava)를 켜고, 회사 근처 경복궁 성곽길 한 바퀴를 달렸다. 스트라바에 로그인한 후 스타트! 처음에는 힘들지 않게 달렸다. 그러나 약 3분 뒤 숨이 차서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뛰다 걷다를 반복했고 2.6㎞를 완주했다. 기록은 22분 43초. 이때까지만 해도 아무렇지 않았다. 하지만 스트라바 앱에서 800명 중 760등이라는 기록을 보자, ‘나름 운동을 한다고 자부했는데···’라는 생각과 가슴속에서 뭔가가 끓어올랐다. 이틀 뒤인 23일 다시 ‘도전’에 나섰다. 두 번째 러닝 기록은 14분 37초. 약 8분을 앞당겼다. 순위는 이 구간을 달린 사용자가 늘어, 822명 중 341등이었다. 만약 다른 스트라바 사용자의 기록과 순위를 보지 못했다면, 기자는 이틀 뒤 러닝을 하지 않았을 게 분명하다. 스트라바가 다른 사용자와의 경쟁을 유도해 운동하도록 만든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이후 헬시 플레저(healthy pleasure·즐거운 건강 관리)가 뜨고 있다. 달리기와 등산, 자전거 라이딩 같은 신체 단련은 물론이고, 식단 관리와 정신건강 관리에 즐거움(pleasure)이 핵심 플러스 요소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1인 가구 증가와 팬데믹이 지속가능한 건강 관리의 중요성을 부각시킨 가운데 SNS(소셜미디어) 인증을 좋아하는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1981~2010년생)의 재미 추구 경향, 이를 겨냥한 러닝 앱과 명상 앱 등 다양한 헬스 관리 앱 개발 경쟁과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게임화) 트렌드가 맞물린 덕분이다. 게임 방식이 고진감래(苦盡甘來) 방식을 대체하는 것이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피트니스, 식단 관리, 명상 등을 포함한 글로벌 건강 관리 시장은 2025년 6조332억달러(약 7227조7700억원)로 2019년 대비 36%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게임처럼 즐기는 건강 관리
헬시 플레저는 흥미를 유발하고, 경쟁 관계를 만들고 성취에 보상하는 게이미피케이션을 통해 즐거움을 극대화한다. 홈 트레이닝 업체 펠로톤(Peloton), 러닝 앱 스트라바 등이 고성장하고 있는 배경이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밸류에이츠에 따르면 글로벌 러닝 앱 시장의 경우 2027년 12억4600만달러(약 1조4900억원)로 2020년(4억9200만달러) 대비 153% 성장할 전망이다.
카카오의 에듀테크 계열사 야나두에서 내놓은 야핏 사이클은 게임적 요소, 동영상 강의, 현금처럼 쓸 수 있는 마일리지 적립 시스템이 결합된 운동 서비스다. 전면부에 부착된 전용 태블릿PC 화면 속 가상 캐릭터를 움직여 친구들과 사이클 경주를 하거나 주요 도시 랜드마크를 달리면서 ‘금괴 수집’ 등의 미션을 수행한다. 삼성전자, 애플, 구글 등 빅테크 기업도 건강 측정 및 운동 기록 기능을 갖춘 스마트워치 등 웨어러블 기기를 통해 헬시 플레저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헬시 플레저족들은 피로 관리에도 집중한다. 숙면을 위해 베개 등 침구류 구매에 돈을 아끼지 않는 슬리포노믹스(sleeponomics)가 뜨는 배경이다. 단순 운동을 넘어 약물 중독을 치료하는 디지털 치료제도 헬시 플레저를 반영한다. 미국 페어 테라퓨틱스가 개발한 앱 ‘리셋(reSET)’을 쓰는 마약 또는 알코올 중독자들은 매주 교육 및 미션을 완료하면 온라인 룰렛을 돌리게 해준다. 룰렛에는 꽝도 있고 아마존 상품권으로 바꿀 수 있는 상품도 있다.
‘어차피 다이어트를 할 거라면 행복하게 한다’는 말을 줄인 ‘어다행다’도 헬시 플레저 트렌드를 잘 나타낸다. 식단을 엄격히 제한하는 다이어트를 하면서 도중에 포기하는 것보다는 스트레스를 덜 받고 포기하지 않는 ‘행복한 다이어트’를 하는 게 어다행다의 핵심이다. 이들은 닭가슴살·고구마가 아니라 곤약 떡볶이, 두부면 파스타, 초콜릿 맛 프로틴 브라우니, 딸기 맛 무설탕 아이스크림 등 칼로리가 낮고 맛있는 음식을 즐긴다. 이들에게 ‘길티 플레저(guilty pleasure·고칼로리의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즐거움과 함께 느끼는 죄책감)’는 찾아볼 수 없다.
일본에서 무알코올 음료 시장이 성장하는 것도 헬시 플레저 트렌드를 보여준다. 일본 산토리의 ‘주류 리포트 2020′을 보면, 작년 일본 무알코올 주류 시장은 2266만케이스(1케이스·633mL짜리 병맥주 20개)로 5년 새 13% 성장했다. 중국은 ‘펑커양성(朋克养生·삶을 제멋대로 산다는 펑커(朋克)와 몸 건강을 챙긴다는 양성(养生)의 합성어)’이 젊은 세대의 특성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들은 즐거운 삶을 추구하는 동시에 건강식품, 운동용품, 침구류 등을 구매하며 건강 관리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그 결과 지난해 1조위안(약 193조원) 규모의 중국 건강 관리 시장에서 18~35세가 차지하는 비율이 83.7%에 달했다.
코로나 블루 퇴치하는 명상
유튜브에서 검색어 불멍을 치면 가정집 벽난로 영상 등이 뜬다. 1시간 내내 장작이 타는 모습만 보여준다. 불멍, 물멍, 풀멍 등의 신조어는 정신건강 중시 경향을 반영한다.
팬데믹이 만든 코로나 블루 확산은 행복한 삶을 위한 ‘멘털 관리’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직장생활로 인한 정신적 피로는 물론 팬데믹 이후 겪는 우울증 등을 치료해 삶의 활력을 되찾는 것이다. 최근 캄(Calm), 헤드스페이스(Headspace) 등 심리 치료 및 명상 앱 이용자가 급속도로 증가하는 이유다. 1억 명 이상이 내려 받은 캄은 키스 어번 등 유명 가수와 함께 만든 명상 및 수면 유도 음악과 이용자가 NBA 스타 선수 르브론 제임스 등과 정신건강을 위한 대화를 하는 프로그램 등으로 흥미를 유발하고 있다. 글로벌 명상 앱 시장이 올해 29억달러(약 3조4000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미국 건강 관리 연구기관 글로벌웰니스연구소의 수지 엘리스 공동설립자는 “건강 관리의 핵심은 능동적 즐거움과 행복 추구”라며 “건강 관리는 단순히 신체만이 아닌 정신적, 사회적, 환경적 건강을 모두 아우르는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 입장에서 헬시 플레저는 직원들의 단순 복지를 넘어 효율적인 비즈니스 전략이 될 수 있다. 시장조사 업체 그랜드뷰리서치의 지난 3월 기업 건강 관리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기업들은 각종 질병으로 인한 직원 결근으로 향후 5여 년간 총 1500억달러(약 179조원)에 달하는 생산성 손실을 볼 것으로 전망된다. ‘이코노미조선’이 ‘헬시 플레저가 온다’를 기획하고 관련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들과 전문가들의 의견을 청취한 배경이다.
+plus point
[Interview]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
“헬시 플레저, 맛있고 즐겁고 편리해야”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10월 6일 출간한 ‘트렌드 코리아 2022′에서 내년 10대 소비자 트렌드 중 하나로 ‘헬시 플레저(즐거운 건강 관리)’를 꼽았다. 김 교수는 “소비자들은 더 이상 건강과 다이어트를 위해 고통을 감수하거나 절제하려 하지 않는다”며 “맛있고 즐겁고 편리한 건강 관리가 MZ 세대를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코노미조선’이 10월 29일 김 교수를 전화 인터뷰했다.
헬시 플레저 트렌드 배경은.
“과거 건강 관리는 ‘지금 이 순간의 쾌락과 익숙함을 절제하는’ 의미였다. 그러나 팬데믹과 MZ 세대 등장으로 건강 관리에도 절제가 아닌, ‘재미’를 추구하는 트렌드가 나타나고 있다. MZ 세대는 어떤 일을 하든지 즐거움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헬시 플레저를 주도하는 MZ 세대와 기성세대의 차이가 있나.
“2030 세대와 기성세대가 생각하는 건강의 의미가 다르다. 과거에는 건강이 ‘몸과 마음에 아픈 곳이 없음’을 가리켰다. 요즘 젊은 소비자들은 매일 자신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그에 맞는 솔루션을 처방하며 스스로 건강해졌다고 느꼈을 때 만족감을 얻는다. 그리고 그 과정이 즐거워야 한다.”
즐거움은 어떻게 찾나.
“다이어트를 보면 과거에는 맛이 없어도 몸에 좋으면 먹었는데, 이제는 일단 맛있어야 한다. 맛있고 몸에도 좋아야 하는 것이다. 또 운동도 편하고 쉽게 온라인상의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즐긴다.”
‘즐겁게 멘털 챙기기’도 중요하다고 했다.
“MZ 세대에게 정신건강은 굉장히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다.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를 보면 서울 강남 뒷골목에 사주 보는 곳이 많았다. 사회가 불안하고 우울하고 취업이 어려우면 불안한 마음을 달래며 즐거움을 얻으려는 트렌드가 강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팬데믹 이후의 현재가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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