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휘발유 평균 가격이 1700원을 넘어서자 유류세 인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전체 기름값에서 유류세 등 세금 비중이 40% 이상인만큼 이를 낮춰야 가격을 잡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정부는 가스요금 등 다른 에너지 가격은 동결하면서도 유류세 인하만큼은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국제유가가 앞으로 더 오를 경우 섣부른 유류세 인하는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고, 세수 하락에 대한 우려도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민심을 잡기 위해 내년 대선 국면이 본격화되면 유류세 인하 움직임이 가시화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 서울 휘발유 가격 7년 만에 1800원 넘어

18일 한국석유공사 오피넷에 따르면 이날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1724.77원을 기록했다. 지난주의 경우 전주 대비 28.3원 오른 리터당 1687.2원으로 마감했는데, 월요일인 이날 37원 상승한 것이다. 특히 서울의 경우 평균 휘발유 가격이 전일 대비 4.47원 오른 1801.05원을 기록했다. 서울 평균 휘발유 가격이 1800원을 넘어선 것은 지난 2014년 11월 25일(1802.33원) 이후 약 7년 만이다.

17일 오후 제주시의 한 주유소 입구에 휘발유 ℓ당 1780원, 경유 ℓ당 1590원을 알리는 가격안내판이 서 있다. /연합뉴스

기름값 고공행진은 최근 국제유가가 크게 오른 데 따른 것이다. 한국으로 수입되는 원유의 기준이 되는 두바이유 현물 가격은 14일 배럴당 82.28달러를 기록했다. 2018년 10월 4일 84.44달러를 기록한 이후 3년여 만에 최고치다. 이에 산업통상자원부는 같은 날 ‘에너지 자원 수급관리 태스크포스(TF)’ 1차 회의를 열고 석유 수급 상황을 점검했다. 정유업계는 국제유가가 2~3주 시차를 두고 국내에 반영되는 만큼 앞으로 가격이 더욱 올라갈 수 있다는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기름값을 내리는 방법은 현재로선 유류세 인하가 유일한 수단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이 지난달 발표한 장희선 전북대 교수의 ‘유류세 한시적 인하의 주유소 판매가격 효과’ 보고서에 따르면, 보통휘발유 가격에서 유류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40%대에 달한다. 현재 리터당 유류세는 교통에너지환경세 529원과 교육세(교통세의 15%) 79.35원, 주행세(교통세의 26%) 137.54원 등 총 745.89원이다. 여기에 부가세 149.09원까지 합하면 전체 리터당 세금은 총 894.98원에 달한다. 10월 첫째주 정유사의 보통휘발유 평균 공급가는 리터당 1639.95원이었는데, 이중 유류세가 48.4%, 전체 세금이 58.1%를 차지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정부는 기름값이 크게 올랐을 경우 한시적으로 유류세를 인하했었다. 지금까지 유류세 인하는 2000년 3월(2개월), 2008년 3월(10개월), 2018년 11월(10개월) 등 총 세 번 진행됐다. 가장 최근인 2018년 11월의 경우 정부는 2019년 5월 6일까지 유류세를 15% 인하했다가 그해 5월 7일부터 8월 31일까지 인하폭을 7%로 줄였다. 장 교수는 “(2018년 유류세 인하 기간에) 보통휘발유 가격이 평균 1619원이었던 점을 고려했을 때 유류세가 15% 낮아지면 가격은 평균 97.14원 낮아졌다”고 분석했다.

◇ 유류세 인하, 타이밍이 중요… 대선 여론전 카드 활용 가능성도

유류세 인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정부는 아직까지 유류세 인하 움직임에 대해 선을 긋고 있다. 그 이유로 정유업계는 아직 국제유가의 추가 상승 가능성이 남아있다는 점을 들고 있다. 세계 주요 전망기관들은 국제 에너지 가격 상승세가 전력·난방 등 에너지 수요가 높은 내년 2월까지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14일(현지시각) 발간한 보고서에서 올해와 내년 하루 평균 석유 수요 전망치를 각각 9631만배럴, 9960만배럴로 전월 전망치보다 각각 17만배럴, 21만배럴씩 상향했다. 천연가스 가격이 상승하면서 석유로 소비가 대체될 가능성이 커졌지만, 원유 생산은 상대적으로 줄어든 상황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올 들어 국제유가가 계속 오르고 있지만 최근 들어 그 상승세가 더욱 가팔라지고 있다”며 “기름값을 잡을 수 있는 수단은 유류세 인하가 유일한 카드인데, 벌써 써버리면 국제유가가 이보다 더욱 올랐을 때 대응할 수단이 없어 신중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예측이 빗나갈 경우도 문제다. 실제 지난 2018년 11월 초 정부가 국제 유가 상승을 전제로 유류세를 내렸지만, 70달러대였던 두바이유가 그 직후인 11월 말 60달러대로 내려앉았다. 당시 정부는 비상용 카드를 허망하게 날렸다는 비판을 받았다.

유류세 인하는 내년 예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2018년의 경우 유류세 인하로 세입이 1조1000억원 감소했다. 장 교수는 “(선행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세에서 유류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17% 수준이라 유류세를 10% 인하할 때 세수가 1조2000억원에서 1조8000억원 정도 감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2018년 당시 예산안 심사는 세수 결손으로 인해 국회 파행을 거듭하다 국채 발행을 최소화하는 방안으로 매듭이 지어졌다.

업계는 정부가 유류세를 인하한다면 내년 대선 레이스가 본격화되는 시기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아직 유가가 정점이라고 보기 어려운데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이동 수요도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만큼 지켜볼 시간이 있다”며 “지금까지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을 봤을 때 유류세 인하 역시 여론 잡기용으로 활용될 소지가 크고, 그렇게 된다면 대선 국면에 접어들었을 때 유류세 인하 움직임이 본격화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